▲ 이경우 편집국장

청문회에 불려갈 기회 같은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꿀 필부지만 남 평가하는 데는 이골이 난 대한민국 보통사람들이다. 예전 같으면 “자신의 평가가 궁금한가? 그렇다면 선거에 출마해보라”는 항담이 있다. 요즘 같으면 “세상의 평가가 궁금한가? 그렇다면 청문회에 서보라”고 권해보고 싶다. 물론 청문회에 설 정도의 깜냥이 되어야겠지만.

경북 어느 지방의 실제 상황이다. 아버지는 지역사회에서 유지로 행세하면서 몸집을 불려왔다. 아무도 그의 능력이나 인격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는 지방의 준공무원격인 조합의 말단 간부였다. 그가 나이가 들어 은퇴한 뒤 자신의 우산 아래에서 자란 2세도 지역사회에서 업을 영위하게 됐다. 그의 아들은 모든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를 `존경`하고 `예우`해 주는데 고무돼 스스로도 자신의 신분을 격에 맞지 않게 올려놓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자기 아버지가 정말 존경받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좁은 지역사회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아버지와 아들을 돌아가며 흉보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들만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전 국민이 지켜보는 청문회에 설 이유도 없으니 그들의 흉은 언제쯤 드러나게 될까.

김용준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를 앞두고 결국 사퇴했다. 자고 나면 새 의혹이 나오는 판이니 평생 올곧게 판사직을 살아 왔다는 본인에게도 너무나 야속한 검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가 대통령 당선인의 인수위원장으로 등판했을 때 언론도 야당도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다. 어릴 때의 장애를 극복하고 최연소 판사에서 대법관이 되고 헌법재판소장이 되고 다시 인수위원장이 되기까지는 한 편의 드라마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국민들의 김용준 인수위원장에 대한 경외감이 의혹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아주 “제대로 한 번 까밝혀 보자”는 쪽으로 분위기가 반전된 것이다. 두 아들의 병역 의혹에다 부동산 투기 의혹은 99% 국민에게는 의혹이 아닌 특혜이자 법을 이용한 비리로 각인됐다. 어떻게 판사 신분으로 부동산 투기를 하고, 그런 사람이 총리에 적합하다는 말인지, 국민들 눈에는 가당찮다. 뒤늦게 제출한 해명서도 의혹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떤 필살기를 믿고 버티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도 마찬가지다. 고위 공직자로서 엄청난 국록을 받으면서도 특정업무경비라는 돈을 챙겼다. 1년에 1억원씩이나 저축이 늘어나고, 시집간 딸들이 생활비를 (마누라가 현금을 좋아해서) `현금으로` 보냈다는 대목에서는 `눈물`이 다 나려고 했다. 공금유용에다 재산형성 과정에서의 부도덕한 처신으로 청문회를 통해 `양파남`이란 별명까지 얻고도 반성할 줄 모르니 지금까지 예우에 대한 배신이다.

몰랐을 것이다. 돈과 명예와 권력까지 가진 사람이 평생을 누리고도 더 욕심을 부리려 든다는 기득권에 대한 세상의 눈총을 말이다. 개인 이익을 국가 이익으로 치부하면서도 자신이 한 행위는 지위 높은 사람들의 업무수행과 품위 유지를 위한 관행이지 결코 사욕이나 비리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 보고 있다. 다 알고 있다.

높은 자리에 있을 때는 아무도 그 허물을 탓할 수도 없었고 지적해 주지도 않는다. 때로는 지나친 것이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 자리씩 올라가며 자신의 허물에는 관대하게 평가하고 덕택에 평생을 누리고 살아왔다고 세상 민심은 판단한다. 아무튼 더 이상 자신을 욕보이지 않고 사퇴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밀실 추천 인사가 말썽인가. 지난 시절엔 그런 정도는 관행인데 청문회라는 검증이 너무 지나쳤는가. 박근혜 당선인의 불만처럼 청문회가 신상털기여서인가. 차라리 법률적 공소시효도 지났고 죄가 되는 것도 아니라고 발뺌이라도 하는 뻔뻔한 후보자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