⑴포항
포항지역 8.6%, 장기면의 11.8%가 군사보호구역
주민, 훈련소음·분진에 주택균열 등 피해 시달려

▲ 포항시 남구 오천읍 구정리 마을 도로를 따라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해병 군부대의 담장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올해는 6·25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정부는 휴전 이후 독자적 능력으로 북한을 막아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며 `자주국방`이라는 구호 아래 수십년간 국방력에 막대한 투자를 기울여왔다. 국민들에게 방위성금을 모금토록 하고, 방위산업 육성기금을 설치해 방산육성을 위한 제도적 인프라를 구축했다.

이같은 과정 속에 과거 전투기 한 대도 보유하지 못했던 시절과는 달리 소총, 곡사포 등 기본장비는 물론 전투기, 전차 등 대량살상무기도 생산이 가능한 정도의 기술력을 보유하게 됐다.

이처럼 정부의 국방력에 대한 투자가 커질 수록 국방부의 힘은 더욱 막강해졌다. 국방부는 점점 세력을 확장시켜 2012년 현재 우리나라의 군사기지·군사시설보호구역·비행안전구역 등 군사보호구역의 총면적은 9천111.6㎢에 이르게 됐다. 주민들은 군사보호구역으로 인해 토지의 효율적인 이용이 제한되고 생활에 불편을 초래한다며 민원을 제기해오고 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지난 1995년부터 일부지역을 보호구역에서 해제하거나 규제완화지역으로 조정해오고 있으나 주민들은 여전히 관련 제도개선과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총면적 8.6%가 군사보호구역

9일 포항시에 따르면 포항지역의 총면적 1천128㎢의 8.6%인 97.2㎢가 군사보호구역으로 설정돼 있다.

이중 대부분은 전술항공작전기지인 K3비행장(포항공항)으로 인해 설정된 비행안전구역이다.

비행안전구역은 군용항공기의 이·착륙에 있어 안전한 비행을 위해 국방부가 지정한 구역을 말한다. 비행안전구역으로 설정된 지역은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에 의거, 군사시설을 제외한 건축물의 증축(제1구역)과 표면높이 이상의 건축물 증축(제2~6구역)이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해당지역의 주민들은 군의 허가없이는 자신이 소유한 땅에 건물을 짓고 싶어도 함부로 지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인근에 위치한 공장도 증축을 원하더라도 고도제한에 걸려 무산되기 일쑤다.

또한 해병대, 해군6전단이 자리잡고 있어 군사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포항지역의 대부분 해안에는 군의 초소가 자리잡고 있다. 끝없이 이어진 철책과 초소는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철책 너머 지역도 비행안전구역과 상황은 비슷하다. 군의 허락없이는 누구도 함부로 출입할 수 없다. 주변지역에 대한 개발행위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뿐만 아니다. 해병대와 해군6전단은 지난 수십년간 포항지역 곳곳에 군사훈련시설을 늘려왔고 이는 현재진행형인 상태다. 군은 국가안보와 국민안위를 이유로 주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했다. 때문에 군사훈련시설 주변에 살거나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주민들은 등 떠밀리듯 고향에서 쫓겨났다. 군은 국가보안법을 이유로 군사훈련시설에 대한 정보 일체를 밝히지 않고 있으나 이같은 시설은 포항지역에만 수십여개소에 이를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포항시 역시 주민들의 삶의 질과 재산 보호가 최우선의 임무임에도 실태 파악 및 공개 등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주저하고 있어 오히려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포항시가 군과 협의해 군사적 용도가 폐기되거나 실행 가능성이 희박한 구역은 과감히 민간에게 되돌려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훈련장으로 전락한 유서 깊은 장기

포항시의 최남단에 위치한 남구 장기면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점철된 포항을 대표하는 역사의 고장이다. 14.5㎞로 이어진 긴 바다를 낀 12개 어촌마을과 21개 농촌마을이 있으며 어촌에는 우렁쉥이, 미역이 풍부하며 해풍이 만나는 육지에는 산딸기, 복분자가 유명하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유배지로 당대의 학자들이 유배생활을 하며 최고수준의 학문을 전파했다. 특히 유교의 대가인 송시열, 실학파의 거두인 정약용 등은 이곳 유배생활을 통해 지역 선비들을 가르쳐 장기를 유학의 고장으로 변모시켰다.

이처럼 포항역사의 뿌리인 장기면의 현재모습은 화려했던 과거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장기면에 따르면 전체면적 97.16㎢의 11.8%인 11.4㎢가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있다. 유격장, 포사격장, 장갑차 훈련장, 해안초소 등 1960년대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군사시설이 10여곳에 이르며 그동안 추가 부지를 계속 매입해왔다.

때문에 각종 훈련으로 발생하는 소음과 분진 등으로 비닐하우스 등에서 재배하는 농작물의 착화율이 떨어지고, 축사에서 기르는 가축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임신율이 감소했으며, 주택벽면에 균열이 발생하고 빨래에 먼지가 쌓이는 등 크고 작은 피해가 이어졌다.

이를 견딜 수 없었던 주민들은 하나 둘씩 고향을 떠났고, 1970년대 2만명이 넘었던 장기면의 인구는 2013년 현재 5천명이 채 되지 않는 실정이다. 남은 주민들의 대부분은 70대 고령층으로 생산가능인구의 비율이 극히 낮은 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재 장기면은 포항지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균형발전 위해 군사시설 정비 필요

경북 동해안 최대의 군사기지역할을 하고 있는 포항에서도 특히 남구 지역은 군사시설로 인해 지역적 불균형현상이 가장 심한 곳 중 하나다.

정치, 문화, 경제 등 주요분야의 각종 기반시설이 도심지역에 집중돼 있어 도시민들이 그 혜택을 누리고 있고, 농·어촌지역은 이같은 혜택과는 크게 동떨어져 있는 형편이다.

이같은 문제는 도·농복합지역이라면 어느 지역에나 있을 법한 일이지만 포항지역은 다수의 군사시설이 포함돼 있어 더욱 심각하다.

군사보호구역 주변 주민들은 이같은 문제의 원인을 군에서 찾고 있다. 군으로 인해 외부에서 투자를 외면하고, 자체적인 개발이나 발전계획을 수립하는 것도 힘들다고 했다. 군이 지역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포항공항 일대의 남구 동해면과 대송면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으며 방공기지가 설치된 남구 호미곶면, 해병대가 주둔한 오천읍 일대도 군 주둔에 따른 경제 유발효과와 피해가 교차하고 있는 곳이다.

이로 인해 주민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지고 심각한 인구유출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해병1사단이 주둔한 포항시 남구 오천읍 구정2리 주민 최숙자씨는 “예전에는 군의 존재가 `필요악`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흐른 이제는 큰 부담으로 보일 때가 있다”며 “지역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군사시설의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차원 피해 보상 이뤄져야”
인터뷰 정석준 포항시의원

수십년간 군사보호구역에 묶여 성장이 멈춰버린 고향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이가 있다. 포항시의회 경제산업위원회 정석준 의원. 장기지역 군훈련장 피해대책 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지역민들을 대변해 군사보호구역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피해를 주장하고 있다. 본지는 군사시설로 인해 겪고 있는 주민들의 피해에 대해 듣고, 장기지역의 향후 발전방향에 대해 논의해 보았다.

△군사시설로 인한 피해는.

- 장기지역에는 현재 10여곳의 훈련장이 있다. 그중 탱크훈련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장기천은 하루에도 수십차례 탱크가 오가면서 주변지역 지반을 침하시키고 생태계를 파괴했다. 예전에는 아낙네들에게는 빨래터로, 어린아이들에게는 놀이터로 사용되던 곳이 폐허로 변해버렸다. 또한 뛰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해안지역은 초소가 점거하고 있어 아무도 주변에 가려하질 않는다. 지금은 과거와는 달리 북으로부터 간첩이 내려오는 시절은 지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군이 해안초소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군사보호구역이 지역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 장기지역의 10%가 넘는 영토가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있다. 군사보호구역은 해당지역에서 발생하는 소음문제, 분진문제, 환경문제 등 표면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주변지역에 대한 발전에도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주변지역에 군사시설이 있다보니 해당지역을 개발하고자 하더라도 제한을 받게 된다. 그렇게 제한이 이어지다 보면 어느새 해당지역은 군의 소유로 넘어가게 된다. 실제로 수년전 대진리에 건립됐던 포스코수련원은 주변지역의 소음과 오염으로 포스코가 운영을 포기하면서 해군6전단이 인수해 헬기구조훈련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장기면 전체가 훈련장이 돼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스럽다. 최근 큰 쟁점이 됐다가 무산된 장기면 복합화력발전소 유치운동에 대한 주민들의 전폭적 찬성은 이러한 지역 위기감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해결 방안은.

- 근본적으로 군사시설은 국민의 소중한 재산을 보호하고 국가의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또한 군이 수십년간 수립해놓은 계획을 마무리짓기 위해 토지를 늘려나가는 것도 이해한다. 다만 뿔뿔이 흩어져 있는 군사시설을 어느 한 지역에 집중시켜 주민들의 피해를 최소화 시켜줬으면 좋겠다. 또한 군사시설을 신설할 경우 주민들과의 기밀한 협조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 이는 주민들의 사유재산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부차원에서 그동안 주민들이 입었던 피해에 대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도로망 확충, 일자리 창출, 복지개선 등을 통해 누구나 살고 싶은 고장을 만들어 지역 균형발전을 이뤄내야 할 것이다.

/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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