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우 편집국장

눈이 내려 도시 전체가 눈 속에 파묻혔다. 도로는 주차장이 됐고 차 속에 갇힌 시민들은 대구시의 준비되지 않은 제설행정을 비난했다. 그런다고 길이 뚫릴 리도 없지만 욕을 퍼부어서라도 가슴 속 분이라도 풀어야겠다는 듯. 그래도 곳곳에서 모범운전사를 비롯한 용감한 시민들이 나서 염화칼슘을 뿌리고 제설작업을 하는 모습은 성숙한 우리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듯하여 흐믓했다. 우리네 일상사도 언제나 뒤처리를 깨끗하게 해야 도로가 도로로서 제 기능을 하듯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있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눈 속에서 깨우친다.

혼자 생활하면서 불편한 점은 단연 식사 문제다. 익숙해지면 괜찮아 지겠지만 혼자 밥상을 마주하고 앉아 식사하는 그 멋쩍고 허허로움이라니. 아침부터 식당을 찾을 수도 없고 보니 혼자 식사하는 싱거움 쯤은 감수해야 하지만 그 뒤처리는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다. 혼자 식사 하더라도 밥솥, 김치통, 찌개냄비 등의 설거지가 예사 문제가 아니다.

어쩌다가 바쁜 날은 그냥 빈 그릇들을 싱크대에 내던져 놓기도 한다. 그러고는 밤늦게 들어와서 보면 그 무질서함이 나태함의 증거 같아 스스로도 상이 찌푸려진다. 나쁜 짓을 저질러놓은 어린아이처럼, 무절제한 생활의 단면을 들킨 듯 숨고 싶다. 10분 정도면 가능한 식사를 위해 준비 시간은 훨씬 길고 뒤처리도 만만찮으니 아직 요리의 즐거움을 깨치지 못한 탓일 것이다.

사무실에서 음식을 시켜먹는 것을 말리는 편이다. 간편함이야 일러 무엇 하겠는가. 그러나 길을 가다가도 사무실 문 앞에 신문지로 덮여 있는 빈 그릇들을 볼 때면 내 위 속에 들어간 음식물이 뛰쳐나오겠다고 아우성치는 듯 외면하고 싶어진다. 그 그릇에 고춧가루 묻은 짬뽕 국물이라도 남아있거나 김치그릇과 된장 뚝배기가 포개져 있을 때면 더욱 그렇다.

깨끗하게 정돈된 집이나 회사의 사무실을 방문할 때면 그 집 주인이나 회사 직원들의 단정한 품위를 넘어 일처리까지 깔끔하게 할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심지어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성격까지도 넘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말끔하게 정돈된 것은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그렇게 깨끗한 것이 아니라 많은 수고를 한 후에야 그런 모양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민생예산 통과에 정부 협조를 당부했다. 새로운 대통령으로서 0~5세 무상보육과 대학생 반값등록금 등 선거 기간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현 정부의 협조가 절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선이 한창 진행 중일때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의 마무리 작업이 잘 될 수 있도록 국무위원이 마지막까지 힘써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우리 정부 내에서 해야 할 일과 다음 정부로 넘겨야 할 것을 구분해서 책임 있는 정부로서 역할을 다 해 달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새 대통령을 맞이하는 전임 정부 책임자로서 당연하고 적절한 지시였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대통합과 대탕평을 인사의 원칙으로 천명한데다 전문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낙하산 인사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임기말인 이 대통령이 청와대 출신을 전문성과는 관계없이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임원이나 감사로 내보내는데 대한 경고의 의미도 담고 있을 것이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아쉬움도 있겠지만 새로 시작하는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 수행을 위해 자리를 깨끗이 정리해 달라는 것이다. 쓰레기는 말끔히 처리해야 한다.

내일이면 새 해를 맞게 된다. 올해 할 일은 올해 모두 끝내고 새마음으로 새해를 맞도록 하자. 미루어둔 숙제들을 하룻밤 새 말끔히 정리할 수 없다면 마음이라도 비워야 한다. 그리고 새 기분으로 새해를 맞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