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지호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 조사역

한국은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 지난 1990년대초 자본 자유화를 시행했으며 특히 외환위기를 극복하고자 외국자본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외국인의 투자 한도와 주식 취득 등에 대한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서 국내 자산에 대한 외국 자본의 지분비율이 급등했고 외국 투기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 위험 또한 높아졌다. 이러한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논의가 외환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 2003년 국제 자산운용사인 소버린이 SK글로벌에 대한 적대적 M&A를 시도했고 미국의 칼 아이칸이 지난 2006년 KT&G와 지분 경쟁을 벌이는 등 외국 자본에 의해 국내 기업의 경영권이 위협받는 사례가 계속되자 재계를 중심으로 경영권 방어장치 강화 요구가 증가했다.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포이즌 필, 황금주, 차등의결권 등의 경영권 보호장치를 도입했으며 이들 중 한국에서는 `포이즌 필(Poison Pill)`에 대한 논의가 가장 치열하다.

`포이즌 필`이란 우리말로 독약 처방 또는 극약 처방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독약을 보유함으로써 포식자의 사냥 의지를 약화시키거나 단념하게 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매수자의 매수비용을 매우 높게 해 매수 시도를 좌절시키고자 하는 수단을 총칭한다. 적대적 매수자가 대상기업 주식의 일정비율 이상을 취득하면 기존 주주들에게 대상기업 주식을 매우 낮은 가격으로 매수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거나 기존 주식을 우선주로 전환 또는 현금 등으로 상환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경우 등이 대표적인 방법이다. 이처럼 `포이즌 필`은 매수 비용을 매우 많이 들게 하는 독약 조항을 만들어 둠으로써 매수자의 M&A 의지를 사전에 차단하는 데 큰 효과가 있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비용이 감소하고 기업경영의 안정성 제고에도 크게 이바지 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경영권에 대한 지나친 보호는 자본시장 발전을 저해하고 기존 경영자의 과잉보호로 이어져 경영의 비효율성을 가져 올 수 있다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다. 한국의 경우 법무부가 상법개정을 통해 `포이즌 필` 시행을 위한 기반을 사실 상 마련했으나 정관에 동 제도를 미리 명시해야 하는 등 아직 기업들이 자유롭게 `포이즌 필` 제도를 활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