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종흠 시사칼럼니스트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패배는 어쩌면 국민의 패배인지 모른다. 여론조사에서 보듯이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정권교체를 원했는데도 이를 성취시킬 수 없었던 국민들의 심정에는 승리의 기쁨 속에 차선의 선택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도 함께 묻어 있지 않을까. 지지하고 싶어도 지지해서는 안되겠다는 마음으로 돌아서게 한 문재인 후보와 통합민주당의 자질과 역량이 오죽했겠느냐는 새삼 따지고 싶지도 않다. 이번 선거 패배에 대한 야권의 잘못을 질책하기에 앞서 이런 수준으로 과연 이 나라에 야당이 제대로 존속될지, 정권대체 정당으로서 구실을 해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대선 기간 중 문 후보는 박근혜 후보를 상대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면서 `독재정권`이란 말을 썼다. 이미 여야 정권교체를 두 차례나 이룬 직선 대통령 정부를 `독재정권`이라 비판한 자체가 별로 설득력이 없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오히려 이런 인식수준을 가진 야권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것 같은 걱정이 앞섰다. 승자인 박근혜 당선인을 기쁨으로 축하하는 마음 한구석에는 현재의 야당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불안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민주당의 박지원 원내대표는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처절한 성찰과 치열한 혁신의 길`을 다짐했다.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성찰에 따라 밝혀진 잘못을 혁신하는 과정을 통해 제1야당으로서의 건강성을 회복하겠다는 뜻일 것이다. 당연한 자기 반성의 변이겠지만 민주당은 이미 지난 4·11총선에 이어 같은 실수를 반복했고, 반성과 혁신을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진정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의문은 대선패배에 따른 당권문제의 처리에서 드러나는 것 같다. 대선에 패배한 문재인 전 대통령후보가 선거과정에서 영입한 국민연대 상임대표인 안경환 서울법대 교수를 새 지도부 선출 때까지 비대위원장에 임명하는 문제로 당이 갈등 국면을 빚었던 것만 해도 그렇다.

민주당의 문제는 민주당이 자율적으로 처리하겠지만 문재인 전후보의 처신은 일반 국민들의 눈에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문 전 후보에게 처음 당권을 위임할 때 조건이 무엇이냐를 따지는 것은 단순한 형식논리에 불과하다. “패장은 말이 없다”는 상식에 비추어 당의 최정상 지도부에 위치했던 인물이 패배의 책임을 혼자 지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더우기 문 전 후보는 박근혜 당선인과 달리 의원직을 버리지 않고 대선후보가 된 것도 국민들의 눈에는 대통령 후보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 다른 욕심이 남아 있는 것 같았는데 대선의 패자가 당권에 관여하려는 인상을 준 것은 정권교체 실패 책임의 엄중함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렇게 되면 민주당의 `처절한 성찰과 치열한 혁신`은 아직도 어떤 내용일 것인지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총선과 대선의 패배가 보여준 민심에는 아무리 정권교체가 절실해도 제1야당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묻지마 선택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국민이 양대선거에서 보여준 가장 특징적인 현상을 든다면 종북이나 친북세력과는 함께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미 4·11총선에서 당의 공식행사에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통합진보당과의 선거연대가 국민의 반대를 불러 왔고, 이번 대선에서도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와의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이 패인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명색이 제1야당이면서 서울시장 후보조차 내지 못한데 이어 무소속 후보인 안철수 교수에 매달려 대선을 치르려는 태도는 수권 능력에 심각한 이상이 있음을 자인한 것과 같다. 민주당이 건강한 야당이 되려면 국민들이 안심할 만큼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