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우 편집국장

“어머니, 좋으시겠네요?”- “무슨 소리냐, 그게?”

대통령 선거 개표가 끝나고 당선인이 확정된 날 아침 식탁에 앉으며 하는 아들의 심드렁한 비아냥에 어머니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투표에서 각각 지지하는 후보를 찍고,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의 상식 아닌가. 어머니는 장성한 아들에게 특정 후보를 찍으라고 권유하기는 커녕 심지어 누구를 지지한다고 표시낸 적조차 없다.

개표방송이 끝나고 소위 정치 전문가라는 인사들이 TV에 등장해서는 이번 대통령선거의 표를 분석하느라 분주했다. 대부분 보수층의 결집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당선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중도 사퇴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의 TV 토론에서의 막말이나 젊은 층으로 예측되는 진보진영의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투표 독려가 50대 이상 보수층의 결집을 가져왔다고 결론냈다.

전쟁이 끝났다. 그것도 싱겁게. 하긴 51.6%대 48.0%. 108만496표 차이였다. 투표율 75.8%는 최근 20년내 대선과 총선 중 가장 높은 수치였다. 높은 투표율이 말해주듯 이번 선거는 보수와 진보 진영의 세력들이 총 결집해서 치른 건곤일척 승부였다. 중앙선관위조차 “밤 11시는 돼야 당선인 윤곽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을 정도로 박빙이 예상됐다. 그런 추측에 비춰보면 초반 리드가 끝까지 이어진 싱거운 결말이었다.

선거 날짜가 다가올수록 양 진영은 초조해졌다.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할 수 없는 마지막 엿새동안 양측은 서로 “굳혔다” 거나 “역전됐다”는 등 언론 플레이를 하기도 했다. 그 사이 양측 캠프는 천당과 지옥을 오간 것도 사실일 것이다. 방송사 출구조사는 전 국민을 TV 앞에 불러 모았다. 그러나 결과는 그 많은 우려들을 `설`로 만들어 버렸다.

지금까지 여론조사 결과는 여당이나 보수측에 유리하게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었다. 자신이 야당을 지지하거나 진보 성향의 후보를 지지하면 공연히 트집을 잡힐까봐 실제로는 야당을 지지하면서도 겉으로는 여당을 지지한다고 표현하곤 했다. 그 허수가 투표 결과에 반영돼 여론조사에서 이기고도 개표하면 뒤집히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엔 이런 현상이 역전된 느낌이다. 실제로는 보수 쪽 후보를 지지하면서도 그러면 왠지 꼰대 같아 보이거나 수구꼴통으로 찍힐까봐 겉으로는 진보인 척 했던 것이다. 그것이 (정확히 표본조사를 하거나 과학적인 연구를 한 것은 아니지만) 투표결과에 반영된 것이 이번 대통령 선거 결과라 생각한다. 식자들은 이를 두고 사회적 소망성 효과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야당과 일부 언론에서는 (젊은 세대의 투표 참여로) 투표율 70%가 넘으면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다고 떠들고 다녔다. 20, 30대 젊은 층이 투표를 해야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고, 그것이 유권자 혁명이라고 선전해댔다. 그러니 투표율 75.8%는 박근혜 후보측을 긴장시켰던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비밀 선거가 보장된 마당에 출구조사를 근거로 세대별 득표율을 이야기하는 것은 믿을 수가 없다. 50대 유권자 중에는 62.5%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고, 대신 30대 유권자의 66.5%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는 선거후 출구조사 보도를 의심하는 것은 그래서다. 야권 단일화를 촉구한 원로회의는 젊은이들의 모임인가?

선거는 끝났다. 이 나라의 젊은이들을 선동해대던 원로회의를 비롯한 이 땅의 나름 진보세력들은 이제 자신들의 근거가 어디이고, 그 주장이 어디까지 얼마나 국민적 신뢰를 받고 있는지 새삼 되돌아볼 때다. 지역별 지지율을 놓고 특정 지역을 규정짓거나 세대별 투표율로 50,60대를 폄하하는 정치적 행태들도 없어져야 한다. 광주가 젊은이들만의 도시가 아니듯 대구 역시 노인들만의 도시도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민주사회에서 1표의 권리는 누구에게나 똑 같이 고귀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