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신 객원논설위원 로타리코리아 이사장·발행인

술은 원래 신성한 음식이다. 인간과 신을 연결시키고 사람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는 역할을 한다. 제사장이 신에게 바쳤던 신성한 음식이자 음복(飮福)에서 빠질 수 없는 매개체로, 인간과 신이 하나로 되도록 하는 연결체다. 제사장이 신에게 올리는 술의 기원은 기원전부터다.

조상을 기리는 제사상에 술을 올리는 역사도 삼국사기에서 확인되는 것을 보면 삼한 이전부터 술은 민중주변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조상들은 새해 첫날이나 정월 보름날 아침에는 귀 밝게 술을 마시도록 했다. 반가운 손님이 왔을 때는 술을 빠뜨리는 적이 없었다. 술은 합일 정신을 가리킨다. 옛 혼례에서는 신랑신부가 술을 마시는 의식이 들어있고, 포도주를 마시는 천주교의 성스러운 종교의식은 천년을 넘게 이어졌다.

조선시대 반가의 필수적인 덕목이 4대 봉제사(奉祭祀)와 접빈객(接賓客)에 대한 대우다. 반가(班家)일수록 4대 봉제사를 잘 모시는 것이 지체 높은 집안이 갖추어야 할 품격이었고,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는 것 또한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최대 배려로 보았다. 두 가지 일에는 반드시 술이 따랐다. 손님이 오면 사랑채를 지키는 가장은 술상을 봐 올 것을 안채에 시킨다.

우리나라가 11년 째 고급위스키 소비 1위 국가라고 한다. 위스키의 본고장 사람들보다 더 마셨다는 통계다. 지난 한해 우리보다 6배나 인구가 많은 미국이 47만 상자를 소비한 데 비해 한국은 무려 69만 상자를 마셨다.

우리나라 술 회사들의 매출규모도 만만치 않다. 연간 7조원에 이르고, 술과 관련된 산업의 매출 규모는 30조원에 이른다. 마시는 사람이야 하루 한 두병이지만 하루 100만 병의 술을 쏟아내는 대형 양조장이 있다고 한다(허시명의 `주당천리`, 2007년 출간).

쌀이 귀했던 시절, 다산 정약용은 쌀을 허비하는 주범으로 술을 지목하고, 소줏고리를 없애자고 했었지만 지금은 창고에 쌓인 쌀을 가장 손쉽게 없애는 방법이 술이 됐다. 마을 전통주와 사라진 가주를 재현하는 데 정부 돈을 지원해주고, 품평회와 술 축제를 여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막걸리 붐도 일었다. 막걸리를 마시면 다이어트에도 탁월한 효험이 있고, 건강에 좋다 해서 너도나도 막걸리를 찾고 있다. 일본인들마저 막걸리를 즐겨 마신다 해서 연일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덕에 지난해 막걸리 점유율이 12%까지 올라서기는 했으나 농민이 갖는 소형 양조장이 아니라 자본이 넉넉한 대형 양조장의 몫이 돼 버린 게 문제다. 막걸리 붐은 쌀을 사용하면서 품질이 좋아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불황에서 빠져 나가려는 지혜도 숨어 있다. 만 원이면 두 사람이 거뜬하게 배를 채울 수 있고, 건강 지키기 트렌드에도 부합되는 장점이 있다.

우리 술은 원래 가정에서 빚는 것이고, 허가를 받는 것은 일제 강점시대 유산이다. 일본의 `사케`처럼 지방마다 특색 있는 술을 내는 것이 죽어가는 농촌을 살리는 길이다. 이미 공주지방 밤 막걸리는 명품이 됐다.

조선시대 양반가에서는 가양주(家釀酒)를 만들었으니 천 가지는 넘었을 것이다. 지금도 300종류는 만들 수 있으니 전통술을 다양화시키고 품질, 외모를 고급화해서 마을산업으로 키우면 남아도는 쌀도 소비하고, 농가 소득도 높이고, 전통도 이을 수 있어 모두가 좋다.

양조장과 마을 비주로 이원화시키고, 인터넷 판매 등 유통과정도 현대화시켜 볼 만하다.

그렇지만 한국이 술 소비대국으로 비치는 것은 좋지 않다.

알콜 중독, 도박, 인터넷, 마약 등 4대 중독국가로 부상되는 것은 극히 좋지 않다. 오죽했으면 경찰이 주폭(酒暴)과의 전쟁을 선포했을까. 4대 중독이 모두가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수치이긴 하지만 유독 주독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한국인이 우스개 꺼리로 세상 사람들에게 비칠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