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나라` 그리스 기행
⑦위대한 황금의 도시 `미케네`

▲ 무덤에서 발견된 아가멤논의 황금마스크.

그리스로 출발하기 전 여러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스 신화`, `그리스 미술`, `그리스 문명`, `그리스인 조르바` 등 넘긴 책을 곁에 두니 제법 많다. 여행 후 다시 넘겨보기 시작한 책이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다. 아무래도 여행하면서 보았던 그리스 문명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다.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중 아가멤논이 있다.
위대한 황금 예술의 전형을 볼 수 있는 황금마스크의 주인. `아가멤논!`
트로이 전쟁의 총사령관 `아가멤논!`

 

▲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이 `아가멤논의 황금마스크`를 발굴한 무덤.

우리 일행은 지금 아가멤논의 유물이 발굴된 미케네로 간다. 미케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고대 성채로 코린트에서 48km 거리다. 길은 아크로코린트 우측으로 뚫렸다. 그 우측 산비탈 자락에는 끝없는 수평선에 걸린 빨래처럼 이야기가 걸려있다.

시지프의 신화다. 바위덩어리를 산꼭대기까지 이고가면 그것이 굴러 떨어져 다시 이고 올라가야만 하는 시지프. 금세 시지프가 오르는 신화의 산자락이 달리는 차 뒤쪽으로 사라진다.

미케네 주차장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찾은 곳은 벌집형 무덤 `아트레우스의 무덤(또는 금고,金庫)`였다. 벌집형이라는 것은 벌의 애벌레가 부화하기 전 머물던 집의 형태로 무덤이 그와 비슷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들어가는 입구 연도 양 옆으로 거대한 돌을 쌓았다. 긴 것과 작은 것을 절묘하게 섞어 쌓았을 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긴 돌을 밖으로 뻗게 하여(안 보이지만) 안쪽으로 넘어지는 것도 방지했다. 둥근 사일로 형태의 내부로 들어가니 침침하다. 밖과 안의 조도가 달라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자 돌덩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온다.

대단한 건축술이다. 13.2m 높이에 지름 14.5m의 원형으로 돌을 33단 쌓은 다음 천장은 돔형으로 만들었다. 그 모든 형태가 치밀한 수학적 계산 없이는 건축하기 힘든 기하학 건축이다. 즉 천장이 바닥으로 쏟아지지 않도록 밖에서부터 안쪽으로 원을 그리듯 둥글게 돌을 올려 중앙엔 하나의 돌로 마감했다. 긴 밤 북극성을 중심으로 별들 회전하는 모습을 긴 노출로 찍은 사진처럼 말이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올려보면 별들의 움직임이 천장에 있는 느낌이다. 천장(天障)이며 천정(天井)이다. 빗물이 안으로 새지 않도록 방수도 완벽하다. 돔형이기 때문에 안에서 이야기하면 상대편의 소리가 확산되듯 울린다. 한쪽으로 또 하나는 작은 공간이 뚫려있는데 그곳에선 많은 보물을 발견했다. 도굴꾼이 그 공간엔 손을 대지 못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연상시키지만 그 형태는 전혀 다르다. 이런 건축물을 기원전 14~13세기 경에 만들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 미케네 왕궁터.

아트레우스의 무덤을 본 우리는 산으로 뚫린 미케네 성터로 향했다. 난공불락의 철벽 옹성이다. 왼편으로 바위를 깎아 높은 담장을 쌓고, 성채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엔 `사자(獅子)의 문`을 만들었다.

`사자의 문` 역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각물이다. 두 개의 기둥 주춧돌을 놓고 그 위 3.1m 길이의 수평 상석을 올렸다. 수평 상석 위 한 덩어리의 돌로 조각한 사자 두 마리가 가운데 기둥을 붙잡고 있다. 기둥은 미케네 궁궐을, 즉 사자 두 마리가 미케네 궁궐을 보호하는 모습이다. 이 역시 기원전 13세기 경에 세워진 것으로 성벽으로 향하는 사람을 쳐다보며 침입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상징물이다.
 

▲ 미케네 성 입구 `사자의 문`.

`사자의 문`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아트레우스의 무덤`처럼 생긴 또 다른 무덤이 보인다. 1876년 독일인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이 발굴한 무덤이다. 그는 이곳에서 `아가멤논의 황금마스크`를 발견했다.

슐리만은 어린 시절부터 호메로스의`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탐독했는데 그는 트로이 전쟁의 주인공 `아가멤논`은 허구가 아닌 실제 인물이라고 믿었다.

사업을 시작한 슐리만은 36세까지 큰 돈을 벌어 고고학에 투자한다. 그가 어느 정도 호메로스에 빠졌는가 하면 자신의 아이들 이름을 일리아드에 나오는 안드로마케와 아가멤논으로 지을 정도였다. 그는 1870년 트로이를 발굴하고, 1876년 미케네에서 서른네 개의 갱도를 팠다. 그 중에서 아가멤논의 황금 마스크를 발굴한 것이다.
 

▲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이 `아가멤논의 황금마스크`를 발굴한 무덤.

호머의 `일리아드`주인공 아가멤논은 고대 그리스 왕국 미케네의 왕이다.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여 10년 동안 전쟁을 치렀다. 아가멤논 왕이 전쟁을 지휘하기 위해 왕궁을 비운 사이,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Clytemnestra)는 아이기스토스(Aegisthus)와 불륜을 저지른다. 갖은 고생 끝에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아가멤논이 미케네의 왕궁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마음은 아가멤논을 떠난 상태였다.

왕비는 애인 아이기스토스와 음모를 꾸며 환영식에서 아가멤논을 죽인다.

여기에 얽힌 이야기는 심리학자 칼융에 의해 `엘렉트라 콤플렉스`란 용어로 탄생한다. 여자아이가 아버지에게 애정을 품으면서 어머니를 경쟁자로 인식하고 질투하거나 적대시하는 경향을 말한다. 즉 아가멤논에겐 엘렉트라라는 딸이 있었는데 엘렉트라는 남동생 오레스테스(Orestes)와 공모하여 아버지의 원한(아버지 아가멤논을 죽인 엄마와 아이기스토스를 살해)을 갚는다.

우린 성안으로 들어가면서 사방을 둘러봤다. 우리나라의 시골 뒷동산 같은 높이로 삼각형을 눕힌 것 같은 성채는 그리 넓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리적 위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산 밑으로 넓은 들이 보이고, 먼 곳엔 바다가 있다. 동편의 에우보에 산과 이어지는 부분이 직각에 가까운 암벽으로 쉬이 접근할 수 없다. 이런 곳에 성을 쌓고, 문명을 일궜다는 것은 그 만큼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며 고유의 문명을 지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에 얽힌 신화 한 도막도 빠뜨릴 수 없는 이야깃거리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가 성채를 쌓았다는 속설인데 기원전 1,350년 전에 쌓은 세계최초의 성벽이라고 한다.

비탈길을 오르자 왕궁터가 펼쳐진다. 한국, 중국, 일본의 궁궐처럼 넓은 평지가 아니다보니 넓은 편은 아니다. 왕궁터 주변에 쌓은 오래된 석축엔 여름 햇살이 쌓이고 있다. 왕궁터 뒤쪽으로 오르자 옛날 사람이 살던 집터가 보인다. 황금을 다루고, 그릇을 빚고, 장롱을 만든 각 분야의 장인들이 살던 곳이다. 동북쪽 끝부분에 우물터가 있다. 지하도를 따라 내려가면 그 옛날 물을 보관하던 물 창고를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성에서 필요한 물을 공급한다는 것은 식량만큼이나 중요했을 것이다.

북문까지 살펴본 우리 일행이 찾은 곳은 그곳에서 발굴한 물건을 전시하는 북쪽 산비탈 박물관이었다. 기원전 16세기에서 11세기까지의 유물을 오밀조밀하게 전시하고 있다. 장인들이 살던 곳에서 발굴한 채색 토기를 비롯하여, 초기 그리스어를 나타내는 점토판도 있다.
 

▲ 아트레우스의 무덤.

유물을 둘러보던 내가 멈춘 곳은 `아트레우스의 무덤`에서 출토된 물건을 전시한 방이었다. 황금 마스크, 황금 목걸이, 황금 귀걸이, 황금 팔찌 등 많은 금세공 유물이 있다. 기원전 14세기 만든 것이란 생각이 안 든다. 며칠 전 만든 느낌이다. 황금 색깔을 보며 정말 변하지 않는 것은 흔한 사랑이 아니라 황금이란 생각까지 든다. 이곳에서 출토된 많은 것들은 이곳뿐만 아니라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에도 전시하고 있다.
 

▲ 돌을 원형으로 쌓아 올린 아트레우스의 무덤 천장.

위대한 황금 유물은 사진으로 책자에 모셔져 전 세계로 흩어진다. 민둥산 위 낡은 성채만 있던 곳에서 발굴된 황금유물로 세계 곳곳의 여행객들은 오늘도 미케네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