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환 작가

오는 12월13일은 박태준 포스코 창업회장의 서거 1주기다. 대선의 아우성이 고인을 추모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덮어버릴지 몰라도, 현재 추모사업위원회는 차분하고 조용하게 그날의 일들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의 눈에 얼른 띄지 않을 일에는 `박태준 연구`라는 학자들의 연구 작업이 있다. 몇 년 전부터 시작한 그것은 올해 4월에 `박태준 연구 총서`다섯 권으로 출간되기도 했고, 이 성과들을 바탕으로 삼아 그의 정신세계와 신념체계를 더 치밀하게 통찰하고 분석한 `박태준의 사상`이 1주기에 맞춰 출간될 예정이다.

지난해 박태준의 서거 당시에 여러 외국 언론과 국내의 모든 언론이 하나같이 그의 영정 앞에 헌화하듯 `영웅, 거인, 거목`을 바쳤다시피, 그는 한국 근대화 시대의 영웅이다. 이 영웅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이제부터 더 본격적이고, 더 적극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책들의 저자나 편저자로서 서문 또는 후기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는데, 그것이 괜찮은 대답이 될 것 같다. 긴 인용이다.

`영웅의 죽음은 곧잘 공적의 표상으로 되살아난다. 이것이 인간사회의 오랜 관습이다. 세상을 떠난 영웅에게는 또 하나의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강요된다. 여기서 그는 우상처럼 통속으로 전락하기 쉽고, 후세는 그의 정신을 망각하기 쉽다. 다만 그것을 막아낼 길목에 튼튼하고 깐깐한 바리케이드를 설치할 수는 있다. 인물연구와 전기문학의 몫이다.

인물연구와 전기문학은 다른 장르이다. 하지만 존재의 성격과 목적은 유사하다. 어느 쪽이든 주인공이 감당한 시대적 조건 속에서 그를 인간의 이름으로 읽어내야 한다.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은, 그의 얼굴과 체온과 내면이 다시 살아나고, 당대의 초상이 다시 그려지는 부활의 시간이다. 이 부활은 잊어버린 질문의 복구이기도 하다. 어떤 악조건 속에서 어떻게 위업을 이룩할 수 있었는가? 이것은 관문의 열쇠이다. 그 문을 열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그의 신념, 그의 고뇌, 그의 투쟁, 그의 상처가 숨을 쉬는 특정한 시대의 특수한 시공(時空)과 만날 수 있으며, 드디어 그의 감정을 느끼는 가운데 그와 대화를 나누는 방에 이르게 된다.

거대한 짐을 짊어지고 흐트러짐 없이 필생을 완주하는 동안에 시대의 새 지평을 개척하면서 만인을 위하여 헌신한 영웅에 대해 공적으로만 그를 기억하는 것은 후세의 큰 결례이며, 위대한 정신 유산을 잃어버리는 사회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 이 신념의 나침반을 따라 한 치 어긋남 없이 헤쳐 나아간 박태준의 일생은 철저한 선공후사와 솔선수범, 그리고 순애(殉愛)의 헌신으로 제철보국 교육보국을 실현하는 길이었다.

그것은 위업을 창조했다. 제철보국은 무(無)의 불모지에 포스코를 세워 세계 일류 철강기업으로 성장시킴으로써 조국근대화의 견인차가 되고, 교육보국은 유치원·초·중·고 14개교를 세워 한국 최고 배움의 전당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 한국 최초 연구중심대학 포스텍을 세워 세계적 명문대학으로 육성함으로써 이 나라 교육의 새로운 개척자가 되었다. 더구나 모든 일들이 오직 일류국가의 이상과 염원을 향해 나아가는 실천이었다.

그러므로 후세는 박태준의 위업에 내재된 그의 정신을 기억하면서 사회적 무형의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박태준 연구총서`와 `박태준의 사상`이란 책들은 그에 대한 학문적 연구의 성과를 체계화하여 앞으로 이어질 박태준 연구에 대한 선행연구의 역할을 맡는 가운데 기존 `박태준 평전`과 함께 언젠가 그를 공적의 표상으로만 기억하게 될지 모르는 그 위험한 길목도 지켜줄 것이다.`

우리는 영웅을 기억해야 한다. 거대한 위업과 함께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그의 정신세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