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나라` 그리스 기행
④수도자들이 떠나는 수도원 `메테오라`

▲ 스테파노스 수도원 벽면의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성경 구절.

새벽이었다. 일찍 눈을 뜬 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7시 넘어 카메라와 시집 한 권을 들고 살며시 밖으로 빠져나왔다.

호텔 뒤편의 기암괴석이 나를 내려본다. 그 풍경을 카메라로 찍는다. 참 많이도 찍는 사진이다.

여행 출발 전 노트북을 챙겼다. 외국 여행 중 컴퓨터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음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호텔 역시 마찬가지였다. 룸에서 인터넷을 사용하겠다고 하니 5유로를 내란다.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처럼 컴퓨터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물론 그것이 강점이면서 때론 단점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 발렘 수도원에서 바라본 그레이트 메테오라 수도원.

로비로 가니 벌써 다른 곳으로 출발하려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메테오라는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이 있는 성지다. 지금 출발하는 사람들은 전날 수도원을 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다. 몇 대의 버스가 출발하고 나니 조용하다. 주차장 근처 수영장에 놓인 긴 의자에 비스듬히 누어 시집을 넘긴다. 시는 함축미를 갖고 있어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여행에서 보는 유물 역시 한 편의 시를 읽듯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세월의 정으로 쪼아 마모된 곳을 나름대로 상상하면서 감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낮은 하늘엔 하현달이 떠 있다. 여행 중에 만난 하현달이라 그랬을까? 그 자체가 조각난 하나의 유물로 생각된다. 그러면서 역시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진다.
▲ 성 니콜라스 아나파사스 수도원의 `아담이 있는 에덴동산` 벽화.

한 시간 남짓 밖에 머물다 식당으로 들어가 아침을 먹고 일행들과 9시35분 호텔을 출발했다. 칼람바카 메테오라(METEORA)는 단어 자체가 종교적이다. 칼람바카는 `은수자(隱修者)`를 뜻하고, 메테오라는 `공중에 떠 있는, 하늘 바로 아래`를 의미한다. 평지에 우뚝 솟은 바위산이 그야말로 신령스럽다. 평균높이 300미터이며, 가장 높은 곳은 550미터란다. 기암괴석은 `007 유어 아이즈 온리(For Your Eyes Only)` 등 많은 영화의 배경도 되었다. 198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에 수도원이 많을 때는 24개였다. 현재는 6개뿐이다. 루사노스 수도원, 발렘 수도원, 그레이트 메테오라 수도원, 니콜라스 아나파사스 수도원, 트리아스 수도원, 스테파노스 수도원(수녀원)이다. 우린 세 곳을 보기로 했다.
▲ 성 니콜라스 아나파사스 수도원에서 바라본 칼람바카 마을.

이곳에 수도원이 들어선 것은 12세기다. 두피아니의 기둥으로 불리는 바위 꼭대기에 있던 파나이아 두피아니란 성모 마리아 예배실이 시초다. 이후 시대에 따라 새로운 수도원이 건축되었는데 가파르고 협소한 곳에 있기 때문에 모든 공간이 좁은 편이다.

처음으로 찾은 곳은 가장 큰 수도원 그레이트 메테오라 수도원이었는데 문이 닫혀 있다. 방문객의 편리를 위해 요일별로 문을 열고 닫는데 우리가 방문한 날은 쉬는 날이란다. 그레이트 메테오라 수도원을 배경으로 사진 몇 컷 찍고 이동한 곳은 모든 성인들의 수도원 발렘(Barlaam) 수도원이다. 발렘 수도원은 두 번째로 큰 수도원으로 1350년 발렘이 수도생활을 하면서 시작되어 이오니아에서 온 수도자 테오파네스(Theophanes)와 넥타리오 아프사라데스(Nektarios Apsarades)가 1542년 완성하였다고 한다. 가파른 계단을 밟으며 수도원으로 올라갔다. 입구에서 여성들은 치마를 둘러야했다. 그것은 규칙이다. 큰 정육면체에 가까운 성당에 들어서자 바닥을 제외한 모든 면이 아름다운 성화로 그려져 있다. 테베 출신의 프랑고 카텔라노(Frango Katelano)라는 유명한 성화가가 1548년 그린 성화(Icon)다. 성화를 보면서 잠시 묵상하고 오래 전 물건을 보관하던 창고로 발을 옮겼다. 나무로 만든 대형 오크통이 보인다. 포도주를 빚을 때 사용했던 것인데 눈대중으로 보더라도 가로 4미터, 세로 2미터는 될 것 같았다. 1만3천리터를 담을 수 있었단다. 그곳 옆에는 과거 외부와 연결할 수 있는 절벽 문이 있다. 즉 절해고도 같은 곳에서 생활하는 수도자들을 위한 식량과 의복 등 가장 간단한 것들을 보급할 수 있는 통로다. 맞은편으로 그레이트 메테오라 수도원이 보인다. 트인 공간에서 슬며시 아래를 내려본다. 낭떠러지다. 현기증이 인다. 오래 전 도르래를 이용하여 사람도 올리고, 물건도 올렸던 장소다. 세속과 단절할 수 있는 곳에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던 곳이 수도원이다. 발렘수도원 박물관에 들러 그곳에서 머물렀던 수도자들의 옛 모습도 엿본다. 수도자들이 사용하던 의복과 성구, 성경 필사본 등 다양한 것들이 많다. 하나하나가 정성스럽다. 그 자체가 기도였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세워질 당시 모든 성인들에게 봉헌되어 모든 성인들의 수도원이라고도 한다.

▲ 메테오라의 바위산과 수도원.

차분한 맘으로 발렘수도원을 벗어난 우리는 칼람바카를 한눈에 내려볼 수 있는 스테파노스 수도원으로 향했다. 스테파노스 수도원은 일명 바실리까(황제) 수도원이라고 부른다. 1192년부터 사람이 머물기 시작하여 14세기에 수도원으로 완공되었는데 1333년 비잔틴 제국의 황제 안드로니코스가 머물렀기 때문에 그런 명칭을 얻게 되었다. 1798년부터 성 하랄람보스(Charalambos or Haralambos)를 기념하는 교회가 되었고, 그 분의 유골을 모시고 있는 수도원으로 1961년 수녀원으로 바뀌었다. 통로 벽에는 성경 구절 액자가 곳곳에 걸려 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테살로니시카 전서 5장 16-18절)의 말씀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 무릇 여행도 그와 같아야 함을 발견한다. 새로운 만남에 기뻐하고, 안전을 위해 기도하고,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는 일정이 될 때 여행은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

대부분의 수도원은 위치와 크기만 다를 뿐이지 안의 구성은 비슷하다. 스테파노스 수도원의 성화는 진한 것이 화려하다. 수녀원으로 바뀌고 1951년 출생으로 천사의 화가라 불리는 봐시오스 토소소니스(Vlasios Tsotsonis)가 복원했단다.

스테파노스 수도원을 나와 우리 일행이 오후 2시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성 니콜라스 아나파사스(St. Nicholas Anapafsas)수도원이다. 1388년 세워져 1628년 확장한 수도원으로 돔의 작은 교회에는 크레타 출신의 성화가 테오파네스(Theophanes Strelitzas, Cretan)가 1527년에 그린 `최후의 심판`과 `천국`을 묘사한 프레스코화가 있다. 또 한 곳에는 에덴 공원의 아담이 그려진 벽화가 있다. 그곳에서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 조 선생께서 그림을 설명한 후 그리스 정교회 미사 특징을 설명한다.

“정교회 미사는 오감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시각은 성경, 성상, 사제, 이웃을 보는 것이고, 청각은 찬양기도, 후각은 향내음과 사람내음, 촉각은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직접 만지며, 미각은 성체인 빵을 나누어 먹는데서 정교회의 거룩한 미사는 완성됩니다.”

수도원의 4대 덕목이라며 회개, 기도, 순종(복종), 겸손에 대해서도 덧붙인다.

그러면서 그리스어 `이뽀아꾸오(내가 듣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의미심장하다.

오래 전 수도원에 안토니오라는 수도자가 있었는데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게 되었단다. 외출에서 돌아온 원장이 안티니오를 부르자 관 속에 있던 그가 `예, 나갈 거예요.` 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수도자들의 복종에 대한 4대 덕목을 강조한다.

▲ 메테오라산을 배경으로 찍은 일행.

밖으로 나서며 성물상점에 들렀다. 성물을 취급하는 상점엔 나무에 성상을 그린 아이콘이 많다. 이곳 특산품이다. 많은 상품 중 원형으로 된 떡살무늬 조각물 하나를 구입했다. 수도원을 벗어나며 떡살무늬에 새긴 글씨의 뜻을 물어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다`란 내용이란다.

신앙인에게 그 문구야말로 영원히 마음에 새겨야 할 문구 같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기념물 하나로 여행이 그냥 즐거워진다. 그 모든 것에 감사! 또 감사!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