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환작가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 포항시 남구 선관위 이마에 붙은 말이다. 다른 선관위에도 붙었는지 모르겠으나, 대한민국 64년사의 산맥 하나는 그 꽃을 제대로 피우려는 고난과 투쟁으로 이루어졌다. 그 꽃은 무엇보다도 대선이 `정책과 인물의 대결`로 이뤄질 때 비로소 활짝 피어난다. 안타깝지만 그 꽃은 이번 대선에서도 시들시들하다. 아직도 정책과 인물의 대결은 성립되지 않았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어떻게 단일화할 것인가? 박근혜 후보와 단일 후보가 맞붙으면 누가 이길 것인가? 이따위에 국민적 관심이 쏠려 있다. 이것은 `안철수의 그늘`이다. 현재까지 그가 가장 잘한 일은 한국정치에 쇄신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이고 가장 잘못한 일은 정책과 인물의 대결을 실종시킨 것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주장했지만, 다음의 대선도 이번처럼 진행된다고 가정할 경우에는 차라리 법을 개정해서 대통령선거일이 100일 남은 날부터는 어떤 명분과 수단으로든 후보 단일화를 금지시켜야 `민주주의의 꽃`에게 거름이 될 것이다.

정책 대결이 실종 상태인 현재, 내가 세 후보에게 똑같이 실망하는 외교정책의 하나는 `6자회담`이다. 평양의 발언처럼 `식물상태`에 있거나 오랜만에 열려봤자 곧잘 헛바퀴를 돌려온 것이 6자회담이다. 물론 그것은 6자의 전략이 서로 어긋나니까 발생한 일이다. 그러나 6자회담의 핵심의제 그 자체가 근본적 문제이기도 하다.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그리고 남한과 북한이 모이는 6자회담이 왜 `북핵(北核)`에만 매달려야 하는가?

나는 6자회담의 명칭부터 뜯어고치기를 바란다. `한반도평화체제 정착을 위한 6자회담`이 좋을 것이다. 북핵은 한반도평화체제 정착의 하위에 있어야 제자리가 맞다. 한반도평화체제 정착의 기나긴 여정에서 큰 걸림돌 하나를 처치하려는 통찰력으로 다뤄야하는 것이 북핵이기 때문이다. 이 주장에 대해 현실성이 빈약하다고 비판할 전문가가 적지 않을 듯하다. 그런데 만약 대선 후보들 중에 누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당신은 역사적 상상력이 빈곤하군요.”라는 반박을 해주겠다.

왜 6자회담은 `한반도평화체제 정착을 위한 6자회담`으로 정정되고 격상돼야 하는가? 이유는 명백하다. `분단 70년`을 불과 2년여 남겨둔 한반도의 비극과 고통을 초래한 당사국들이 바로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이기 때문이다. 새삼 문헌들을 들출 것도 없다. 분단의 근원은 일제 식민지 지배였다. 세계적 냉전체제의 확립 속에서 미국과 러시아(구 소련)는 한반도 분할점령에 대한 협상의 산물로서 `38선`이라는 분단을 창출했다. 김일성 정권이 일으킨 한국전쟁에 중국이 개입하여 `휴전선`이라는 새로운 분단을 창출했다.

평양의 나팔수는 변함없이 `우리 민족끼리`를 외쳐대지만, 한 발의 총성도 없었던 독일의 흡수통일 과정에서 그때 서독 정부는 러시아, 프랑스, 영국, 헝가리, 미국 등을 상대로 긴박하고 절박한 외교전을 펼쳤다. 여기에 관해서라면 우리의 전문가들도 바싹하게 공부를 해놨을 것이다. 더구나 남한은 북한을 흡수할 실력이 모자란다. 전쟁통일은 결단코 반대한다. 전쟁으로 통일할 바에는 통일을 안 하는 것이 낫다. 그래서 평화통일은 우리의 시대적 숙원이 되었다. 그러나 한반도평화체제 정착이 선행되지 않으면 평화통일은 오지 않는다.

이번 대선에서 우리는 역사적 상상력과 담대한 외교적 모험심과 확고한 시대정신을 겸비한 후보를 뽑아야 한다. 이런 대통령만이 6자회담 당사국 정상들에게 6자회담의 명칭 변경과 핵심의제 조정을 설득할 수 있다. 그 자리에서 윤리적 정당성은 확실히 우리 대통령의 것이다.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당신들이 바로 한반도에서 7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분단의 비극과 고통에 대한 실질적 책임자라는 사실을 환기시키는 우리 대통령은 참을 수 없는 눈물을 흘려도 좋다. 분단의 비극과 고통에 진정으로 민감한 지도자라면 그 자리에서 눈물을 참기도 어려울 것이다. 유엔총회에 가서도 왜 6자회담이 `한반도평화체제 정착을 위한 회담`으로 정정되고 격상돼야 하는가를 호소하고 주장해야 한다. 인류의 양심에 공명을 일으킬 만한 명문장과 명연설로 말이다. 지금 여기, 그런 대통령 후보가 있고 그런 정책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