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종흠 시사칼럼니스트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개봉 38일만에 팩션사극으로는 `왕의 남자`에 이어 두 번째로 관객 1천만명을 돌파해 화제가 되고 있다. 작품은 그렇게 완성도가 높지는 않은 것 같으나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실록`에 기록이 빠져있는 15일 동안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든 가짜 임금 `광해`의 왕노릇 과정에서 보인 리더십이 우리의 현실정치와 대비해 너무나 흥미진진한 것이 관객을 몰아넣는 이유다. 이 영화의 주인공 `광해`는 영화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 인물 자체가 극적인 인생을 살았고, 아직도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데서 지속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될 것 같고, 특히 영남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해 갖가지 상상을 자극하고 있다.

광해군은 조선조에서 왕의 자격이 없다고 폐위된 임금이지만 우리의 교과서에는 중국과의 외교관계에서 멸망한 명나라를 멀리하고, 당시 지배왕조인 청나라와의 관계를 중시한 실리외교를 폈고, 임진왜란을 초래한 훈구파의 부패를 개혁하려던 개혁군주로 기술하고 있다. 이 때문에 광해군이 자신보다 나이어린 계모 인목대비와 그녀의 아들 영창대군을 죽인 패륜적 행위를 징치한다는 명분으로 인조가 반정을 일으켰지만 훈구파의 복권을 꾀한 정통성없는 왕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광해군은 반정을 일으킨 세력을 제압하지 못했기에 조선조에선 왕이 아닌 군으로 폄하되었고, 지금도 일부 사가들은 정권도 지키지 못한 무능한 군주로 평가하고 있다.

어쨌든 광해군의 실패는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는 망국의 한을 가져왔지만 인조를 추종하는 노론 세력은 영정연간의 짧은 기간외에는 조선조가 망할 때까지 집권과 영화를 누렸고, 그들의 외교는 멸망한 명나라를 지극정성으로 받드는 우스꽝스러운 나라가 되고 말았다.

광해군의 폐위(인조반정)는 그 자신의 몰락만 가져온 것이 아니다. 이와 동반해서 영남지역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아직도 영남권 지식인들에게는 역사적 교훈이 되고 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을 초래한 기득권세력의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당시 북인으로 지칭되던 영남우도의 남명학파에 속한 정인홍 일파를 등용해 혁신정책을 펴면서 정치쇄신의 강도를 높였다. 이같은 쇄신책에 목을 움추리고 북인세력을 칠 기회를 엿보던 기득권세력은 정인홍이 영남좌도의 학문적 태두인 회재 이언적과 퇴계 이황을 비판하고, 이들의 문묘종사를 반대하는 것을 계기로 영남세력이 분열되자 반정을 일으켜 성공한 것이다. 영남사림파 세력의 약화가 인조반정 성공의 계기가 된 것이다. 그 이후 영남우도의 남명학파는 몰락의 길을 걸었고, 영남좌도의 퇴계학파를 중심으로 한 남인들도 조선조 말까지 200년간 권력과는 거리가 먼 길을 걸었다. 조선조 후기의 거의 모든 기간 권력을 누렸던 노론세력의 일부는 일제강점기와 이승만정권까지 친일과 아부로 계속 영화를 누렸다.

대선정국이 달아오르는 요즘, 여론조사에 나타나는 영남권의 표심과 호남권의 표심이 매우 대조적인 현상을 보면서 광해군 당시의 영남권 분열이 가져온 역사의 굴곡이 새삼 뇌리를 스친다. 보수세력의 텃밭인 영남권에는 이전 선거 때와는 달리 야권세력이 세력판도를 괄목할 만큼 확대해가고, 호남권에서는 야권후보 중에서도 지지도가 높은 후보에게 몰표를 줄 것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영남은 분열되고, 호남은 뭉치는 형국인 것이다. 물론 왕조시대와는 달리 후보의 자질과 정책을 보고 투표를 한다면 지역이 분열되든 통합되든 좋은 대통령을 뽑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과거 정부의 경험에서 보면 지지를 많이 받은 지역에 대한 배려가 자칫 지지가 낮았던 지역에 대한 홀대로 나타날 가능성이 기우만은 아니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세 후보 모두가 영남출신이란 점에서 영남표심의 분열은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보수의 거점인 영남이 후보 출신지 때문에 표심이 분열된다면 영남의 정치적 장래는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