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신 객원논설위원 로타리코리아 이사장·발행인

지금쯤 몽골 초원에 누워보면 내 눈앞으로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별들이 아까워 잠 들 수가 없을 것이다. 그 오지 지역에도 우리와 똑 같은 사람들이 정겹게 살아가고 있다. 그 많은 별들 가운데 유독 지구별에 올라 탄 것도 기적 중에 기적이다. 지구별이 속한 태양계만 살펴봐도 수·금·화·목· 토성, 천왕성, 해왕성 등 9개의 행성에다 32개의 위성, 1천600개에 이르는 소행성이 사이좋게 태양을 돌고 있다. 이 별들 가운데 지구는 크지 않은 별이다. 토성의 762분의 1, 목성에 비해서는 1천318분의 1, 주별 태양에는 130만분의 1이다. 사실 지도를 펴고 보면 우리나라 땅 덩어리는 지구면적의 0.1%, 미국 인디아나주 정도의 크기이지만 5천만명이 부대끼며 살아간다.

이런 작은 땅에 200만년 직립인류사에서 같은 시간대, 같은 공간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인연이다. 길을 스치는 누구와도 끌어안고 얼굴을 맞대도 쑥스럽지 않은 인연들이다. 하지만 이 기적 같은 인연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인생의 빠르기를 부싯돌에 이는 불꽃같다고 했다.

빠른 것은 세월뿐이 아니다. 태양을 도는 지구의 속도는 인생의 빠르기를 초월, 아찔할 정도다. 초속 18마일(28.8km)이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총알의 8배로 날아간다. 우리들은 이런 무시무시한 속도로 태양을 도는 지구별에 편안하게 얹혀 온갖 걱정과 고민을 하고, 재색명리를 탐하고 사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태어나는 것부터가 기적이다. 그 확률을 의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60조분의 1이여서 재미있고 놀랍다. 의학적 의미에서 살펴보면 인간이 평생 갖는 성관계는 보통은 3천번, 체력이 좋은 사람은 4천번 쯤 된다고 치면 한 번에 1억마리에서 5억마리의 정자를 사출한다. 1억마리(1회)로 계산했을 경우도 오직 한 마리만 간택되니 세상에 나오는 것부터가 그렇다. 여자는 한 달에 하나씩, 일생동안 400여개의 난자를 생산한다. 이때 정자는 여성이 가진 짧은 나팔관을 시속 120km라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야 한다. 여성의 난자는 가장 튼실한 정자를 씨앗으로 삼는다고 하니 선택되는 것을 기적이라 여기지 않을 수 없다. 횟수와 여성의 배란기, 난자 생산 능력 등을 감안했을 경우 1등을 맞는 그 성공확률을 의학적으로 계산하면 60조분의 1로 당첨된다는 가설이다. 그러니 인간이 태어난 것 자체가 운명적이고, 기적이다.

남자는 하루에 대체로 5천~6천마리의 정자를 생산한다. 이 정자는 쓰지 않으면 죽어버리기 때문에 늘 소비처를 생각한다. 그래서 남자들은 원시시대 때부터 종족번성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세워 못된 짓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신문 사회면을 도배하는 성범죄와도 결코 무관치 않다.

인간세상과 마찬가지로 정자의 세계에서도 생존경쟁이 존재한다. 로빈 베이커(영국 진화생물학자)가 쓴 `정자전쟁`에 나온 얘기다. 로빈은 종족 보존 본능에 따라 여성의 몸속에 서로 다른 남성의 정자를 넣어 보면 5억마리의 대군이 서로 편을 갈라 격전을 벌인다는 것. 자신의 유전자를 후손으로 남기기 위해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인다고 한다. 인간의 번식 욕심은 너무 강하다.

미국의 불임부부들이 기증받은 정자로 인공수정을 통해 출산시키는 아기는 한해 3만~5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한 남성이 정자 기증으로 129명의 생물학적 자녀를 출생시켰다는 사례도 있다.

어째든 이런 귀중한 삶이 백수시대로 가긴 했지만 여전히 아쉽고 금쪽같다. 60도 넘어 지금은 100세 시대에 사니 참을 수 없는 행복이다. 볼을 꼬집어보고 생전해보지 않았던 “사랑한다”는 말을 연발, 부인을 깜작 놀라게 해주고 싶다. 기적을 최고의 꽃으로 피우려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당연히 나눔이다. 한국인은 소득 2만불 시대에 살지만 늘 불행하다고 여긴다. 가슴에 나눔이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의 한 자선기관이 조사한 한국인의 봉사지수는 조사대상국 153개국 가운데 53위였다. 태국(9위) 라오스(10위)보다 처지니 가슴에 행복이 자리 잡을 수가 없을 것. 나눠보라. 입가에 미소가 절로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