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종흠 시사칼럼니스트

한국민임을 진정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은 문화민족으로 세계에서 인정받는 일이다. 국민소득이 높은 것도 뽐낼 일이지만 그보다는 문화적으로 알아주는 나라의 국민일 때 더 큰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물질적으로 풍요롭다해도 인간다움의 가치를 누리는 차원에서는 문화가 앞서기 때문이다. 물질적 기반 없이 문화적 성취를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경제적 성공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문화적 성취는 우리 스스로의 자긍심은 물론 외부 세계에서도 존경받는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기덕 감독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획득한 것과 싸이 박재상의`강남스타일`이 세계의 대중음악계를 석권한 쾌거는 엄청난 민족적 자랑이 아닐 수 없다. 한류 바람이 불면서 한국문화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세계정상으로 공인된 경우는 사실상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에도 여러 장르에서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예술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현대 대중예술의 최고봉을 만들었다는 것은 극동의 작은 나라에서 세계문화의 지도적 위치에 올랐음을 보여주는 감격이었다.

이같은 문화적 성취는 우리에게 잠재된 DNA가 이제부터 표출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란 생각을 가지며, 마음이 설렌다. 앞으로도 우리가 하기에 따라 더 많은 분야의 문화계에서 세계사적 업적을 낼 것이란 확신이 든다. 민족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인 일제강점기에 일제식민지배를 위해 총독부가 조사해서 만든 “조선인의 사상과 성격”이라는 대외비 자료에는 고려시대의 미술공예가 당시 중국의 송나라보다 뛰어났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적어놓았다. “고려시대의 청자는 오늘날(일제당시) 으뜸으로 존중되는 것으로 조선이 옛날부터 이러한 높은 수준의 미술을 지녀왔다는 것을 상상하면 조선연구가 심심한 흥미를 자아낼 것이라 여겨진다”고 했다. 고려 시대 송나라의 자기는 동서양에서 세계최고의 미술품으로 평가되었지만 실제 고려자기는 송나라 자기보다 우수했다는 이 말에서 한국을 깔봤던 일본인들조차 고려자기가 세계 최고였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 후손인 우리가 세계 정상의 문화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 최고봉에 오른 이들 두 사람의 경우를 보면 모두 예술계 주류에서 양지의 혜택을 누렸다기보다 아웃사이드에 속하거나 자기만의 길을 개척한 예술인이란 점에서 예술과 문화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지원방식이 바뀌어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김기덕 감독의 경우 이번 작품은 제작비도 불과 1억원 정도이고 독립영화여서 상영극장도 얻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싸이도 국내에서는 호응이 높지 못해 유튜브를 이용한 댄스곡을 만들어 세계인의 공감을 얻었다.

사실 우수한 문화예술인이 자신의 창작을 인정받으려면 자본가의 지원을 받거나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빠르다. 이번에도 이들 두 사람은 정부지원 없이 자신의 힘으로 해냈다는 점이 너무나 값지다. 그러나 우리의 우수한 문화적 DNA를 더 넓게 발산시키자면 예술가들의 개척정신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진정으로 우수한 문화예술인을 찾아내고 이들에게 맞춤 지원을 하는 방식이 강구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문화예술계 지원방식을 보면 우선 중앙과 지방의 격차가 너무 크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과거의 사례를 보더라도 지방에서 활동하던 예술인이 지방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다가 활동무대를 서울로 옮긴 후 대성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같은 지원의 지역격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지방에서 외국으로 나가 인정받고 돌아오는 것이 더 빠른 성공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 그것은 세계무대의 예술평가가 공정했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처럼 세계무대에서 먼저 알아주는 까닭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넘어간다면 우리의 문화수준은 여기에서 머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