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로타리 코리아 발행인

채소를 소금에 절여 적당히 발효시켜 먹는 김치이야기는 3천년 전부터 중국역사서에 나온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금처럼 즐겨먹는 김장김치가 완성된 것은 1천800년대에 들어서부터다. 그 전에는 소금 등 기초 양념만 입히는 절임김치였을 것이다.

고추가 들어온 것이 임진왜란(1592~1598)때로 알려졌고, 배추 겉잎이 안으로 오그라드는 결구(結球)배추는 1천700년대 중반쯤 중국서 종자가 들어왔다.

결구배추라야 젓갈이나 무채 낙지 해산물로 속을 채울 수 있어 김치보쌈이 만들어진다.

예전엔 겨울 김장이 반년 양식이라 했고, 배추김치 반포기를 썩썩 찢어 얹으면 고봉밥 한 그릇도 너끈히 비울 수 있었다. 동짓달이면 동네주부들이 품앗이로 김장을 했다.

김장독을 땅에 묻어두면 이듬해 초여름까지 반찬걱정을 덜 수 있었다.

김치냉장고가 아무리 다양한 기능을 발휘해도 군내가 살짝 피는 초여름 김치 맛을 살릴 수 없다. 배추가 맛좋고 영양가 풍부한 것은 배추벌레가 먼저 알고 달려든다.

배추엔 농약을 적당하게 뿌려주지 않으면 좀 나방 배추흰나비 진딧물 등 워낙 벌레가 달라붙어 잎을 갉아 먹는가하면 그대로 두면 속이 짓물러 터지는 `꿀통배추`를 만들어서 그해 농사를 망친다.

외국여행을 하다보면 사나흘만 지나면 속이 니글거려 김치 생각이 간절해 진다. 뱃속이 평소 식생활습관과는 다른 음식이 들어와 혼란을 일으키면 김치생각에 걸려 여행재미도 놓쳐 버리는 게 한국인들이다.

임금님 밥상에 올라가는 김치는 새우젓, 전복, 오징어, 낙지, 조개, 소라, 큰새우 작은 새우 등등 13가지나 된 해물이 들어가 어(御)딤채로 격상시켜지니 그 맛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궁중 김치는 해물이 상하기 쉬운 계절에는 담지 않지만 봄·가을 수랏상에는 내야하니까 보관방법도 수월치 않다.

이런 음식을 먹고 나면 살고 싶은 욕망이 더 생긴다.

사대부가로 시집을 가면 그 집 법도에 맞는 장 담그는 법과 김치 담그는 법, 가전비주를 빚는 방법을 전수받아야 한다.

장을 담그는 법이나 가전비주 빚는 법은 우리 정신문화와도 연결된다. 우리 전통가주는 “주안상을 본다”라고 말하듯 음식으로 분류되었다. 술의 냉기를 없애고, 밥 반주로 애용됐던 우리 술은 세금을 더 많이 거둬들이려는 일제의 책략으로 인해 거의 사라졌다.

이른 봄 살림살이를 모르는 새댁이 장독 뚜껑을 열어 놓으면 장맛이 없고 쉬어버린다. 봄이면 공기 속 염도가 낮아져 장독을 열어두면 염도가 하늘로 날라가 버리기 때문이다.

상추쌈은 눈을 홀기지 않을 크기로 싸고, 치마저고리는 신체선이 드러나지 않게 넉넉해야 하며, 종의 고된 삶을 보채지 말아야 하는 등 시집가기 전 과외가 만만치 않았다.

한국음식은 김치나 떡볶이 등 단일 음식으로는 대표로 내놓을 수 없다. 칠첩 반상기에 담긴 다양한 맛과 냄새·색감·상위에 오른 음식이 갖는 온도 등 조화로움이 가득한`밥상`이 대표한다. 길거리에서 주로 판매되는 떡볶이와 같은 단일음식보다는 밥상에 담긴 조화로움과 정성이 한국 것이고, 한식의 매력일 것이다.

대구장아찌 전복장아찌도 유명하다. 오이채와 돌미나리, 첫순 부추를 적당하게 썩고 감식초로 만든 초장을 친 `다슬기(사고동)무침`은 더 일품이다. 다슬기는 간에 좋고, 눈도 밝아지는 우리고유 약용음식이다.

예부터 음식 잘 만드는 것도 타고난 식신생재(食神生財)라고 했다.

나이드니 철학 위에 먹는 거라는 말이 참말처럼 들릴 때도 가끔은 있으니 식신생재가 식탐이라기보다는 가을 날씨에 빠지고 음식에 빠지는 경우를 일컬어서 하는 말인 것 같다.

서양인들이 사상적 혼동을 느끼면 희랍고전을 꺼내든다는 비유보다는 식신생재가 더 맞는 비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