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종흠 시사칼럼니스트

나주의 7세 어린이 성폭행사건은 또 한 번 우리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이런 일이 너무 자주 벌어져 TV에 보도되는 현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이러다가 사회가 집단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은 사념이 든다. 어떻게 자기 집에서 자던 어린이가 이불 채 납치돼 참혹한 성폭행을 당하고 버려졌는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이같은 처참한 어린이 성폭행 사건이 처음 일어난 것도 아니고, 어른들의 성폭행 사건 또한 사흘이 멀다않고 발생하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 사회가 성도착적 증세에 심각하게 감염되고 있는 증거가 아닌지 사회 구성원 모두의 깊은 반성이 요구되는 시대다.

성폭력을 두고 온갖 논의와 대책이 있었지만 성범죄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현실은 무엇 때문일까. 정치권에서도 국회차원의 조사와 대책을 내놓은 바 있고, 정부와 관계기관들도 나름대로 대책들을 제시했다. 물론 학계와 종교계 등 국민적 처방이 쏟아졌던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성범죄예방을 위해 국법으로 거의 모든 국민에게 성교육을 여러 해 동안 실시해왔다. 지금 잇따른 참혹한 성범죄 발생의 결과를 놓고 보면 부질없는 짓인 것만 같다. 그 같은 대책과 교육마저 없었다면 더 많은 성범죄가 일어났을 수 있었을 것이란 주장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렇게 성범죄가 만연하는 것은 그러한 모든 처방과 대책이 근본적이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만은 분명하다.

옛부터 범죄를 두고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보는 성악설과 본성은 착한데 후천적으로 나쁜 환경이 범죄를 저지르게 한다는 성선설이 논쟁을 해왔다. 유가에서 성인으로 추앙받는 맹자(孟子)는 대표적인 성선설의 주창자였고, 특히 그는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그의 4단론(四端論)은 사람과 사람같은 `짐승`을 가르는 기준으로 제시됐다. 그중에서도 우물에 빠지려는 어린이를 보고 놀라 이를 구해주는 측은한 마음(惻隱之心)을 인간이 가진 참지 못하는 마음(不忍之心)의 첫 번째로 손꼽았다. 이번 나주 어린이 성폭행범 고종석은 위험에 빠진 어린이를 구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위험한 범죄의 표적으로 삼았던 만큼 맹자라 할지라도 사람이 아니라고 했을 것이다. 문제는 고종석 처럼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이 하나가 아니고, 우리 사회에서 수가 증가하는 것이다. 맹자는 이 같은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인구가 증가하는 원인을 정치의 잘못으로 보았다.

지금 우리가 맹자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면수심의 인간이 증가하는 원인은 우리 사회 전체가 잘못된 사회 환경 속으로 빠져들고 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성범죄자의 거의 모두가 어린이 포르노에 노출됐고, 특히 어린이 성범죄자는 이번 나주의 경우처럼 모방범죄를 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도 남는다. 어린이 포르노물은 제작, 유포, 관람 등 모든 행위가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단속의 손길은 느슨하고, 사법처리 또한 지나치게 관대하다. 성인포르노물은 이 보다 훨씬 더 일상화됐고, 심지어 부모들의 방심으로 자녀들에게 노출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는 건강한 성교육이 아닌 `짐승`으로 자라게 하는 성교육이 음지에서 독버섯처럼 뒤덮고 있음을 말해준다. 성교육의 대상인 아이들과 성교육을 시켜야할 어른들의 사회가 위험수위를 넘어 함께 감염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문제의 해결에 가장 앞장서야 할 정치권도 일과성의 조치를 취하는 수준으로 방치하고, 정당들도 자신들의 제안을 내놓기보다 상대 당 발언의 말꼬리를 잡고 치고받는 식의 말싸움으로 사태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있다. 교육계와 종교계도 이전부터 되풀이해 온 처방을 거론할 뿐 다른 묘책을 내놓지도 못하고 있다. 성문제로 이제 사람이 `짐승`으로 변해가고 있는 시대에는 우리 모두의 비장한 자각 없이는 정화 방법이 없을 것이다. 아무리 성개방 시대라 해도 인간 스스로가 인간다움을 지켜내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무슨 해법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