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동해안 청동기 유적, 소국 존재 가능성 높여

▲ 포항 남구 호동쓰레기매립장 확장공사현장에서 출토된 유물과 발굴현장.

경북동해안에 소국의 부족국가가 오래전부터 존재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은 일단 연오랑세오녀의 신화에서 출발한다. 경북동해안 포항에서는 곳곳에서 청동기 시대 유물이 발견된다. 규모를 이룬 집단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북 동해안에는 고인돌 왕국이었던 청동기시대에 이미 군장들이 중심이되는 지배계급이 출현해 많은 유적들을 남기면서 소국들이 형성 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청동기 초기 철기시대에 이르러 이지역 에서도 소국이 성립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가(國家)가 발전해가는 차례가 먼저 소국들이 모여 연맹체를 이루고 나아가 중앙 집권적 고대 국가로 나아가는 성장 과정을 거친다. 지금까지 밝혀 놓은 학계의 생각이다. 즉 소국이란 국가 성립의 첫 단계라 보면된다. 이 소국들이 이루어진 지역에서 점차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세력을 확장해 주변 일대를 지배하였다. 이어서 철기가 널리 보급되어 사용되면서, 철제 농기구와 무기의 보급으로 농업 생산력이 크게 향상되어 경제 기반이 확대되었고, 정복 전쟁도 활발해져 갔다. 이에 따라 부족간의 교역이 확대 되었고, 부족 사회의 통합도 촉진되었다.

글 싣는 순서

<1부=경북동해안 철기문화 꽃피우다>

1)한반도 철기문화의 뿌리
2)경북동해안은 고인돌 왕국
3)경북 동해안의 소국
4)동예인들의 후예
5)신라가 진한지역을 통일하다
6)철을 가진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7)철기문화발전의 최적지 영일만
8)고래의 고장 영일만
9)고급철강의 비밀-고래기름
10)2천년전에 예고된 포스코신화

□진한의 12소국

여기서 정말로 경북 동해안에는 정말로 소국이 존재했을까.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진한의 12소국의 명칭이 나오는데, 12소국은 기저국·불사국·근기국·난미리동국·염해국·군미국·여담국·호로국·주선국(마연국)·사로국·우유국이라 하였다. 여기에 언급된 명칭과 현재 울진, 영덕, 포항의 연혁에 이와 같은 소국이 이름들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경북 동해안에서 소국으로 등장하는 울진의 우중국〔優中國, 또는 우유국(優由國)〕, 영덕 영해에 우시국(于尸國), 포항에 근기국(勤耆國) 등은 삼한(三韓)중 진한(辰韓) 연맹체의 구성원인 12소국의 일원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삼한 중 가장 세력이 컸던 마한은 경기, 충청, 전라도 지방에서 발전하였다. 마한은 54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졌고, 모두 10여만 호에 이르렀다. 그중에서 가장 큰 세력은 목지국이었으며, 목지국의 지배자는 마한왕 또는 진왕으로 추대되어 삼한 전체를 주도하였다. 변한은 낙동강 하류의 김해ㆍ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진한은 대구ㆍ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각각 12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졌으며, 모두 4~5만 호에 이르렀다. 변한과 진한을 합치면 24국이고, 큰 나라는 4천~5천가, 작은 나라는 600~700가로 총 4~5만 호이다. 경북 동해안의 소국들의 생활상을 모두 살펴 볼 수 없는 자료이기는 하나 이것을 바탕으로 울진, 영덕, 포항에 있었던 소국들의 실상은 어땠을까.

▲ 포항 남구 인덕산 절취공사현장에서 출토된 유물.
□동해안 소국 실상은

경북 동해안에서는 삼한 시대에 나타났던 그지역의 소국 성립 사실에 대하여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울진군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 한 것은 선사시대부터 였다. 북면 주인리 석수동에서 구석기시대의 석기들이 출토되어 이 지역에서는 일찍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죽변리 유적과 후포리 유적 등 신석기시대와 봉산리 주거지와 다수의 고인돌 유적으로 보아 청동기시대를 거치면서 소국 형성의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초기국가(읍락국가)시대에는 울진지역에 진한12국 중의 하나인 `우중국〔優中國, 또는 우유국(優由國)〕`이라는 소국이 형성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소국 성립의 실체를 살펴보기 위한 방법을 고고학적으로 볼 때는 경상도 지역에서는 기원전 1세기에서부터 서력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이르러 다량의 철기를 부장하는 토광목관묘(土壙木棺墓) 유적들이 급격하게 많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점은 새로운 정치권력이 형성되어 계층분화가 이루어진 현상을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영덕은 원래 영덕(盈德), 영해(寧海) 양군이었던 것을 서기 1914년에 합병(合倂)하여 오늘에 이고 영해는 현(現) 영해, 축산, 병곡, 창수 4개면으로 삼한(三韓)시대에는 우시국(于尸國)이라 칭하였고 고구려시대에 군(郡)으로 강등되었다가 신라 탈해왕(脫解王) 23년 (서기 79년)에 지방 관리(官吏) 거도(居道)가 반격하여 신라의 속국이 되었다. 여기서 소국 우시국의 명칭이 나타났는데 위서 동이전에는 표현되지 않았다.

포항 시사에는 근기국은 오늘날 포항시 인덕동·호동·오천읍·대송면·동해면 및 인근지역에 형성된 읍·락들을 지배하면서 소국(小國)을 이루어 이 지방의 중심세력으로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근기국 치소의 중심지는 물이 나는 계곡을 둔 높은 구릉에 축조된 고현성터(古懸珹)가 있는 고현마을(지금의 원동)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문헌상으로 영일읍지(迎日邑誌)에 근거한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호동 마을 유적을 들 수 있으며, 이 유적은 높은구릉 정상부에 위치하여 거주와 방어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고지성 마을 유적이다. 주위보다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은 위치상, 소국의 중심지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 외에도 흥해읍 남·북미질부성과 옥성리 고분군, 청하면 덕천리 유적 등에서 당시의 생활유적과 분묘유적이 확인된다.

□근기국의 실체는

근기국은 신라의 건국(B.C 57) 이전인 기원전 2세기 초에서 1세기 말경, 영일만 일대에 소국을 형성하고 군림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인근에는 흥해 지역의 다벌국(多伐國, 흥해로 추정), 기계 지역의 초팔국(草八國, 기계로 추정) 등 ≪삼국지 위지≫에 진한 12국으로 표현되지 않은 소국들도 있었다고 소개하였다. 소국들이 성립된 것은 시간적 문화적 배경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적 변화과정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삼국지 동이전≫에는 “국읍(國邑)에는 주사(主師)가 있으나 읍락(邑落)들이 잡거(雜居)하여 서로 잘 제어하지 못한다”고 하여 삼한의 각국은 국읍과 다수의 읍락별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국(國)은 “지배적인 읍(邑)”을 뜻하므로 국읍이란 다수의 읍락들 중에서도 중심적 기능을 발휘하는 대읍락으로 해석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삼한의 각 국은 대·소의 읍락들로 구성된 정치집단이라 하겠다. 읍락은 소국 형성 이전부터 각지에 성립되어 있었던 개별적인 정치집단들로 서라벌 6촌 설화들을 통해 볼 때, 이들은 청동기 문화 단계의 족적(族籍)결합과 정치활동에 바탕을 둔 집단들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삼한에서 각 소국이 성립된 것은 이러한 소규모 집단들이 철기문화가 확산되고 유·이민이 이동해 오면서 일어나는 정치·문화적 변화에 대응하여 지연(地緣)에 바탕을 둔 보다 확대된 정치집단으로 총합 발전되어 갔던 것이다. 근기국도 이런 발전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 포항 남구 구룡포-대보간 확장공사현장에서 출토된 유물과 발굴 현장. 위 사진 모두 청동기시대에서 원삼국시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근기국의 구성단위는 읍락들이었다. 이들의 상하관계는 삼국지 동이전에서 주민이 거주하는 취락집단을 국읍(國邑)·읍락(邑落)·소별읍(小別邑) 등으로 구별한 것에서어느 정도 들어난다. 국읍이란 소국의 중심이 되는 읍락을 뜻하며 규모가 크거나 일반 읍락과 구별되는 기능을 발휘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근기국이란 여러 읍락들을 통합하고 조정할 수 있는 독립된 정치집단으로 큰 규모의 읍락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한 소국인 것이다. 진한 지역에서는 <동이전>에 기록된 12국 이외에도 소규모의 독립적인 정치집단이 많이 있었다. 국읍과 소별읍 등은 규모나 기능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고 해도 사회적 구성이나 조직 원리면에서는 일반 읍락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읍락은 대규모 주민 거주지인 읍(邑)과 촌락의 뜻인 락(落)의 복합어라는 해석도 할 수 있고, 단순히 일반 취락을 뜻하는 경우도 있으나 단순한 일반 촌락과는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근기국의 근거지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포항시 남구 오천읍 원동에 있는 고현성이라는 성터가 남아있어, 당시 근기국 통치의 근거지(국읍)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 고현성 유적을 실측한 결과 흙으로 성벽을 쌓은 토성의 높이는 2m~1.5m, 성내에서는 우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근기국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경주의 사로국, 추정을 하고 있는 다벌국(흥해), 초팔국(기계) 등과 육로.수로를 이용하여 교류 하였을 것이다.

□특별취재팀 = 이준택, 정철화, 이용선(이상 본사 기자), 김용우 향토사학가, 장정남 한빛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

    특별취재팀 = 이준택, 정철화, 이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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