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침체 영향 집 안팔려 진퇴양난

서울 강남구의 공급면적 142㎡짜리 대형 아파트를 보유한 50대 후반의 직장인 A씨는 최근 집 근처 다른 단지에서 100㎡ 초반의 중형 아파트를 새로 매입했다.

작은 집으로 갈아탐으로써 생기는 시세 차익을 은퇴 후 노후자금으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살던 집을 처분하기 전에 새 집을 덜컥 사놓은 게 문제였다. 주택경기 침체로 대형 아파트를 찾는 수요자가 자취를 감춘 탓에 현재 살고 있는 있는 집이 팔리지 않아 골치가 아프다.

A씨는 “은퇴를 앞두고 집을 줄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새 아파트를 먼저 사놓은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8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700만여명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 시작되면서 A씨처럼 면적이 작은 집으로 옮겨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주택을 매도하려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상당수 베이비부머들이 은퇴 후 마땅한 생계 수단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유일한 자산인 집 규모를 줄여 생활자금을 조달하는 `주택 다운사이징(downsizing)`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들의 퇴직 시기가 부동산 침체기와 겹친 탓에 현재 보유 중인 집을 처분하지 못하고 진퇴양난에 처한 사례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60대 퇴직자 B씨는 서울 강서구의 공급면적 165㎡ 아파트를 팔고 같은 단지의 115㎡로 옮기려고 동네 중개업소를 찾았다가 두 아파트의 시세 차이가 불과 1억여원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집을 바꿔도 차익이 1억원에 불과한 데다 양도세, 취득세, 중개수수료 등을 다 내고 나면 남는 돈이 별로 없어 선뜻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고 B씨는 전했다.

이처럼 대형과 중소형 아파트의 가격 격차가 좁아진 것은 수도권 부동산 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유럽발 경제위기 우려가 높아져 가격이 비싸고 거래가 잘 되지 않는 대형 아파트 선호도가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형 주택을 많이 보유한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맞아 한꺼번에 매물을 쏟아내고 있어 이런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팀장은 “베이비붐 세대 사이에서 `주택 다운사이징` 유행이 불면서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다보니 `소화불량`에 걸린 상황”이라며 “중소형과 가격 차이가 적어 지금은 다운사이징에 의미가 없다. 매각 차익과 세금 부담을 모두 고려해 차분하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