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종흠 시사칼럼니스트

19대 국회도 원구성을 못하고 장기 표류할 조짐이다. 이미 24년째 원구성 법정시한을 어긴 국회의 위법 악습이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악의 위법국회인 14대 국회는 125일, 18대 국회는 88일 동안, 24년 평균 54일간 국회는 원구성도 못한채 국민이 위임한 국정을 방치하고는 국민의 막중한 혈세를 축낸 전철을 답습할 것같아 국민은 울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다. 19대 국회의 의원, 보좌관 등이 6월 한달간 놀면서 받아가는 예산이 무려 150억원이나 된다는 사실은 새로운 국회 역시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국회라는 생각을 강하게 갖게 한다.

국회 원구성이 늦어지는 이유를 여야 간에 변명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위법 악습을 관행화하는 것은 이미 입법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상실한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할 수 없다. 여당은 야당이 잘못된 아집 때문이라 할 수 있고 야당은 여당의 부당한 독선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번 국회도 여야 원내 대표단의 주장을 들어 보면 상임위원장 배분과 국정조사 등의 문제에 대한 이견 때문이라 한다. 본시 민주국가의 국회는 여야의 주장이 다르기 때문에 존재한다. 국민의 다른 의견을 국회라는 장내에서 해소하자는 취지로 제도화한 것이다. 이견이 있다고 해서 국회의 원구성 자체를 무산시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을 뽑지말고 정당끼리 난타전이나 벌이면 될 것이지 뭣 때문에 혈세를 써가면서 장외의 말싸움만 한단 말인가. 특히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회의 구성과 활동이 이뤄지기 때문에 국회의원으로 선출돼 임기가 시작되면 헌법기관으로서 위상을 부여받는 것인데 원구성을 안하는 국회라면 왜 그같은 특권을 누리게 해야 할 것인가.

이번 국회의 원구성 이견 문제도 따져보면 타협되지 못할 사안이 아니다. 상임위원장 배분문제만 해도 국회가 있는 한 언제나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일정한 상임위원장 자리를 어떻게 여야가 나누어 가지느냐는 것은 정당별 의석수와 여야의 희망 상임위원장 우선순위에 따라 타협하면 가능할 것이다. 여야 어느 쪽도 100% 만족할 수 있는 결과는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무리한 주장을 펴는 것은 처음부터 원구성에 마음이 없는 것이라 해도 할말이 있을까. 국정조사냐 특검이냐를 놓고 샅바싸움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언제 국회가 국정조사에서 시원한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는가. 국정조사가 만능이 아니고 특검 또한 만병통치가 아닌 이상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최대한 사실규명에 접근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현실적이다. 국정조사냐, 특검이냐를 놓고 여야가 벌였던 과거 국회의 입씨름을 아직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는 것을 보는 국민들은 너무나 지겹다. 아니 역겹다.

지금 우리는 유럽발 재정위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떤 위험한 사태에 직면할지 모르는 급박한 처지다. 사회양극화 문제와 청년실업, 비정규직 근로자, 대학의 반값등록금 등의 문제들로 민생이 도탄에 빠져 있다. 안보면에서도 북한의 심상찮은 협박과 미사일 발사에 이은 핵실험 가능성 이와 더불어 우리의 남서해는 미·중·일·러 등 4개국 해상훈련 문제로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가고 있다. 이에 대처하는 한미군사체제의 재편을 둘러싼 중대한 결정도 내려야하는 과제도 주어진 상태다. 물론 지난 총선에서 여야는 민생을 챙기고 정치를 쇄신하겠다며 침이 마르도록 국민들에게 호소하며 표를 달라 했고 19대국회 임기가 시작되기가 무섭게 바로 민생과 정치 관련 법안들을 쏟아놓았다. 그러나 이렇게 위중한 국가적 난국을 눈앞에 두고도 원구성 법정 시한을 예사로 어기는 것을 보는 국민들은 여야 정당들이 어떤 명분으로 포장한 법안을 내놓아도 그 진정성을 신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정치권이 국회를 표류시키는 까닭이 12월의 대선 전략과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회를 버리고 집권에만 집착하는 정당은 결코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다. 국민들은 대선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국회의 위법악습을 뜯어고치기 위해 궐기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