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계절 빠짐없이 언제나 그대로의 절경

이상한 일이다. 난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이곳 청량산에만 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한계절 빠짐없이 언제나 그대로의 절경을 보여주는 봉화 청량산. 청량산이라는 이름 탓, 아니 그것보다는 이곳을 오기 위해 달려보는 꿈같은 드라이브길이 주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국도의 매력은 고속도로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기에 난 웬만한 여행길은 국도를 통해 달린다. 도로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이나 바위들을 곁에서 지켜보며, 때로는 마음대로 차를 세워 계곡에서 커피 한 잔을 끓여 먹고 달릴 수도 있고, 어떨땐 산딸기 나무를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한바구니 산딸기를 따기도 하는 그런 여유로움 때문이다.

모처럼의 맑은날 영덕 방면으로 드라이브를 하고 있는 나에게 부산의 친구 몇몇이 청량산을 가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이미 주왕산을 지나고 있다는 친구들의 연락에 청량산에서 보자는 기약을 하고, 나는 영덕을 지나 송천교차로에서 창수 방면으로 차를 몰았다.

점심은 각자 해결한 후 청량산 입구에서 만나기로 한 만큼 조금은 여유롭게 주변 풍광을 즐기면서 차를 몰았다. 영양쪽의 도로는 몇 번 와본 경험이 있는지라 익숙한 풍경들이 많았다. 5월의 푸르름이 극에 달해 아카시아 꽃내음과 소나무의 싱그른 향내음이 차창 밖으로 진하게 느껴온다. 며칠전 잠시 내렸던 비 탓인지 계곡의 물들도 적당해 자연이 만들어 놓은 풍경화가 내 눈 앞에 어디 한군데 빠지는 것 없이 꽉 차여있다.

영양을 지나 한참 달려오니 고계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부터는 도로와 계곡이 맞붙어 환상의 드라이브 길이 시작된다. 물살을 가로 지르며 여름에는 래프팅이 극치를 달리는 곳이다. 아이들이 어릴때부터 시작해 몇해전 성인이 된 큰 녀석이 군에 가기전에도 와서 타본 래프팅이다. 차량을 지프로 바꾼 후 오프로드를 꼭 해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약간의 구름이 있어 적당히 햇볕도 가려주고 바람 또한 선선하다. 마주 달려오는 어느 동호회의 차량 행렬이 제법 길다. 같은 색의 차종이 있어 서로 손을 흔들어 주며 지나치기도 한다.
 

도산서원 방면으로 한 7km 달려오니 청량산 입구가 보인다. 작년 여름 군에간 큰 녀석이 특박을 나와 펜션 하나 잡으려고 생 고생을 한 슈퍼집에서 간단히 간식거릴 준비하곤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니 청량사에 올라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산을 잘 못타는 난, 친구들을 내려오라고 독촉하니 한 10분만 올라오면 된다고 극구 위에서 보자고 했다. 사실 청량산을 몇 번이나 와 봤지만 청량사는 한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입구까지 차를 몰고 갔다. 표지판에 1.9km, 친구 녀석 또한 한 10분 거리라 하니 만만하게 생각하고 올라간 청량사는 나에겐 솔직히 죽을 것 같았던 악몽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파른 길의 연속…. 중도에서 포기하기도 아깝고 해서 저기만 가면, 저기만 가면 하면서 올라가다보니 겨우 정상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솔직히 남들은 20~30분이면 올라오는 곳이라 하는데 난 거의 2~3시간이 넘게 걸려 올라온 느낌이었다.“켁켁” 거리며 일어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친구들은 우스워 죽겠다는 표정들이다. 그만큼 운동 부족이 실감났다.

그 고통도 잠시,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깜짝 놀랄 풍경에 또 한번 가슴이 뛰었다. 산 꼭대기에 세워진 석탑과 그 배경으로 보이는 금탑봉, 눈앞을 휘감는 연적봉…. 말문이 막힌다. 매번 산밑에서만 바라보기만 한 이 곳의 풍경은 올라와 보지 않은 사람은 죽어도 느껴보지 못하는 풍광이 펼쳐져 있었다.

청량산은 봉화군 명호면과 재산면 안동시의 도산면과 예안면에 위치한 도립공원으로서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며 일명 소금강이라고 불려지고 있는 명산이다. 또한 산 곳곳이 깎아지른 듯한 층암절벽에 요상한 모양의 암봉들과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절대절경이다. 크고 둥글둥글하게 생긴 봉들이 여덟개나 있고 그 봉들이 품고 있는 동굴만도 열두개에 이른다고 한다. 입구에서 등산로를 따라 보통 사람들은 20~30분거리, 산 정상에 거대한 금탑봉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아래는 아득한 낭떠러지…. 바위들이 마치 층으로 이뤄진 금탑 모양을 하고 있고, 층층마다 소나무들이 암벽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청량산 주변에는 신라시대 최치원의 유적지로 알려진 고운대와 명필 김생이 서도를 닦던 김생굴이 있고, 암릉을 따라 금강굴, 원효굴, 의상굴, 반야굴, 방장굴, 고운굴, 감생굴 등이 들어서 있다고 한다.

청량사, 왜 퇴계 이황 선생님이 도화라는 표현으로 청량산을 아끼고 사랑했는지 그 답이 청량사에 서서 청량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알 것 같다.

가파른길을 올라가며, 옷이 비를 맞은듯 땀은 왜 그리도 흘렸는지 모르지만 청량산의 매력은 나에게 더 커져 버렸다.

가을이 오면 다시금 꼭 한번 찾아오리라 맘 먹고, 내려오는 발길내내 후들후들 다리가 떨리는 내 모습에 친구 녀석들은 박장대소하며 재미있다는듯 웃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