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종흠 시사칼럼니스트

지금 위기의 정점을 치닫고 있는 그리스 국가부도 사태와 유로존의 금융불안은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빚진 그리스가 채권국들의 긴축 조건부 금융지원책을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스페인이 불안에 휩싸이고 유로존 전체가 흔들리는 바람에 세계 경제가 충격속에 빠져들고 있다.

우리로서도 결코 강건너 불구경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금융시장이 강한 타격을 받아 코스피 지수가 그리스와 같은 수준인 3.4%나 떨어져 1800선이 무너졌고 외국인들의 투자액이 계속 빠지고 있는 것은 심상찮은 현상이다. 최근 G8정상회의에서 그리스 국민들의 긴축거부를 일부 수용하는 뜻으로 해석되는 약간의 성장을 인정하면서 일부 긴축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절충안이 나오는 것을 보면 적당한 선에서 채권국과의 타협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금융시장의 영향에도 불구, 한국경제가 그리스 사태에 직격탄을 맞지는 않겠지만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는다면 결코 안심할 입장은 아니다. 지난 97년 우리도 국가디폴트 사태를 겪었고 2008년에는 미국발 금융위기를 극복했던 경험에 비춰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충분히 대비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IMF관리체제 당시보다 국가부채가 약 4배나 늘었고 부채를 줄이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다. 특히 부채증가의 주된 이유가 계층간 소득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가운데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데 있기 때문에 불안의 그림자를 벗어나기 어렵다. 더욱이 지난해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저축은행 부도사태와 권력형 비리 부패가 끝 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97년의 디폴트에서 얻은 교훈을 우리 사회가 그것도 지도층이 먼저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97년 당시에도 우리의 경제적 기초로 본다면 국민의 각성과 지도층의 현명한 대처가 있었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일을 그렇게 참담하게 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결코 정부의 낙관적 태도에 안도할 수만은 없을 것같다.

이번 그리스의 교훈은 국가부도 사태에 직면해서도 우리의 경우처럼 자발적으로 금모으기를 하고 긴축을 받아들이기보다 이를 거부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정치 지도층이 해결하라는 태도를 보이는 점이다. 국민들이 그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국가부채가 결코 일반 서민들이 빌려 쓴 돈 때문에 생긴게 아니란 것이다. 오히려 정치지도층의 정책 실패와 일부 부유계층의 부패, 정경유착 등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고 과중한 부채로 인한 고통을 서민들이 짊어진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과거 경제위기 때와는 국민의 생각이 많이 다를 것 같다. 혹시라도 유럽의 금융위기가 우리 경제를 최악의 상태로 내몰게 된다면 이번에는 자발적 금모으기나 긴축요구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97년의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많은 국민들은 부동산 거품을 망국적 현상이라 봤지만 위기가 가까스로 수습되기가 무섭게 부동산 투기 바람이 일었다. 이같은 부동산 투기바람이 일어난데는 국민들의 잘못도 있지만 더 큰 잘못은 이를 부추기는 듯한 정책을 쓴 정부에 있었던 것이다. 많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들은 공적자금 상환도 채 끝나기 전에 엄청난 연봉을 챙겼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형 비리와 부패는 청산되기보다 오히려 증폭되는 현상이다. 여기에 재벌들의 독점독식이 중소업체를 파산으로 내몰고 저축은행 사건에서 보듯 대주주의 파렴치한 범죄적 행각은 막장부패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를 감시 감독해야할 금융감독기관과 감사원, 사정기관 등이 오히려 공범처럼 방조해 온 것에는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극단적 경쟁을 당연한 사회적 제도로 받아들이는 한 승자독식이 가속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부패와 독점으로 치부한 기득권세력이 무한경쟁으로 빈부격차를 벌여 나간다면 위기상황에서 국민적 협력은 결코 기대할 수 없다. 그것은 부패 경제의 과보이기 때문이다.

/홍종흠 시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