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종흠 시사칼럼리스트
최근 언론에 보도된 2008년 5월에 촬영된 사진 한 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로 각인됐다. 고향 후배인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과 더불어 막강한 방통위원장의 자리에 올랐고 대통령의 멘토로 정권의 최고 실세가 된 포항 구룡포 출신 최시중씨가 만면에 흐뭇한 표정이 피어났고 참석한 고향 사람들도 자랑스런 마음으로 축하하는 장면이었다. 하필이면 대검 중수부가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최 전 위원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보도 기사와 함께 4년전 고향 사람들 앞에서 출세와 영광의 기쁨을 드러내는 사진을 보여준 것은 지인들에게는 물론 특별히 고향 사람들에게는 안타깝고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의 기쁨이 부끄러움으로 변한 지금, 그의 고향 사람들은 차라리 그가 고향 사람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사실 현 정권의 연고지인 포항은 정권 말기를 맞으면서 최 전 위원장 외에도 고향의 명예를 훼손하는 출세한 인사들의 문제로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님인 이상득 의원의 여비서 계좌에 괴자금 8억원이 입금된 사실이 말썽을 빚고 있는데다 4·11총선에선 새누리당 후보인 김형태씨가 당선은 됐지만 제수 성추행 혐의가 불거지면서 챙피하기 짝이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연오랑세오녀의 전설이 어린 동해의 대표적 항구 포항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가슴이 답답하다.

한편 생각해 보면 특정 고향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동향인 모두가 욕먹을 일은 아니다. 고향사람이 출세하고 권력을 쥐었다고 해서 그 때문에 덕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번에 최 전 위원장 사건에 연루된 브로커 이동율 같은 사람은 아마도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들에 빗대어 언론과 다른지역 사람들이 그 고장을 들먹이는 것은 아마도 특정 지역인의 출세와 영광에 대한 집단적 질투심리인지도 모른다. 엄격히 말한다면 그렇게 싸잡아 나쁜 이미지로 색칠해 버리는 것은 그 고장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억울하고 불쾌한 일이다. 사실 고향은 누구나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것이다. 자기 의지로 선택하지 못하는 고향 때문에 멍에를 씌우는 듯한 여론 몰이는 이제 없어져야 할 것이다. 선거로 뽑힌 사람의 전력에 문제가 있었다해도 그를 공천한 정당과 사정 관련 기관, 당사자들의 분명한 판단과 증거제시가 없는 한 반드시 유권자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그러나 포항 지역에 유독 이런 문제가 여러 건 중복되는 것은 옛말에 `화불단행(禍不單行)`이란 불운 때문이 아닐까. 잘못된 일은 왜 한꺼번에 몰리는 것일까.

고향 사람이라 해서 더 반가워하고 고향 사람이라 해서 정을 베푸는 것은 어느 곳 어느 시대에도 인간의 상정이다. 더욱이 성공한 고향 사람을 환대하고 격려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까.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가 좋고 객지에서 만난 고향 까마귀는 그래서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어찌 고향 까마귀와 친한 것을 탓할 수 있으랴.

그러나 성공과 출세를 거머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고향 사람에게 누를 끼치지 않겠다는 각오와 결심이 필요하다.

왕조시대에는 특정인이 패륜을 저지르게 되면 그 고장을 전체적으로 벌을 주는 의미로 행정 구역의 위상을 격하시켰고 자손 대대로 벼슬을 하지 못하도록 폐족을 만들었다. 민주시대에는 그런 일은 상상할 수 없겠지만 잘못을 범한 당사자는 지금도 자신의 부모와 조상, 친지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 태어난 고장이라 해서 욕할 수는 없더라도 그 고장 사람들이 위축되는 분위기에 휩싸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느 시인은 `고향은 어머니`라 했다. 어머니의 얼굴이 일그러지지 않도록 출세한 동향인의 잘못된 잔영을 하루 빨리 씻어내는 것도 고향 사람들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