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종흠 시사칼럼니스트

19대 총선에서 대구·경북 지역의 모든 선거구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된 것을 두고 일부 언론을 포함한 일부 여론은 이 지역의 정치적 선택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선거결과에 대한 사후평가뿐만 아니라 선거운동 기간 중에도 일부 지방언론과 중앙언론, 일부 야성향의 인사들까지 집단적으로 대구·경북 민의의 새누리당 독점 가능성을 마치 잘못을 저지르는 것처럼 몰아붙여 야권후보에 노골적으로 편을 드는 행태를 보였다. 이들의 평가대로라면 대구·경북민의 새누리당 후보에 대한 전폭 지지는 지역민의 정치의식에 큰 결함이 있거나 한국의 정치발전에 장애를 만드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선거운동 기간중에 공공연히 이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새누리당 후보의 낙선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은데도 이를 개의치 않았던 것은 대구·경북민의 정치적 의사가 이같은 주장을 펴는 사람들의 계도를 받아야 할 만큼 잘못됐다는 것인가. 새누리당 일당 독점구도는 민주정치와 역사에 죄를 지은 것인지 진지하게 공론화해 볼 일이다. 민주정치와 정당정치를 등식화해놓고 있는 우리의 정치체제로서는 일당정치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특히 집권경쟁에 나선 정치세력이 단일 정당뿐일 때는 국민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일당독점 정치는 사실상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러나 여러 정당이 경쟁하는 가운데 국민이 그 중 하나의 정당을 선택했다는 것은 국민에게 잘못이 있다기보다는 선택을 받지 못한 정당 쪽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정당 선택의 다양성을 확보하지 않았다고 유권자를 비판한다면 그것은 국민이 나라의 주권자임을 부정하는 짓이다. 국민이 하나의 정당만을 선택하고 다른 정당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선택받지 못한 정당은 다음 기회에 선택받기 위한 자기반성과 자기혁신을 하는 것이 마땅하고 그것에 실패한다면 그 정당은 정치권에서 소멸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승리한 정당에 대해 새로운 경쟁정당이 탄생되는 것이 민주주의 체제의 자연스러운 집권경쟁의 원리인 것이다. 물론 국민의 정치적 수준이 낮아 선택을 잘못함으로써 우중정치를 자초할 수도 있지만 그 선택이 우중정치를 초래했느냐를 판단하는 것은 당시의 국가적 불행이 현재화하지 않은 이상 역사의 몫이다.

대구·경북권의 정치적 선택이라 해서 이같은 원리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런데도 대구·경북 새누리당 일당독점을 비판하는 사람들과 언론들은 흔히 지역정치에 경쟁이 없기 때문에 지역이익을 위한 이슈에 게으르거나 소극적이라고 주장한다. 지역이익에 직결된 사업에 여야가 함께 힘쓰면 잘 될 수 있다는 논리다. 또한 지역의 정당경쟁이 확보되면 어느 쪽이 집권하든 지역 정치의 안정성이 확보될 수 있기 때문에 지역발전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경쟁구도를 만들지 못한 지역민의 선택을 공개적으로 부끄럽다거나 비난하는 인사들과 언론들은 복수의 정치지형을 만드는 것에 대해 무조건 옳다는 확신을 가진 것 같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과 확신은 정치현실과 민주주의의 원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대구·경북민이 새누리당후보를 선택한 것은 주권의 행사인 만큼 이를 비판할 지위에 있는 자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의 현실에서 새누리당 이외의 정치세력은 지역과 국가의 안정과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역민의 판단은 결코 비난받을 일만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주권자로서의 정당한 권리인 것이다. 설사 이같은 선택이 대구·경북민의 어리석은 정치의식이란 판단을 내릴 경우라도 그것은 역사의 몫이라 할 것이다.

유권자가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공천정당의 정강 정책과 공약, 지도부의 성향, 후보당사자의 능력과 인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고 그중에서도 정당의 노선이 선택의 우선 사항이 된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과 민주-진보당의 연대를 비교해보면 대구·경북민이 무엇을 중시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한미FTA의 반대, 제주해군기지반대, 야권연대 주역의 무단월북과 김정일 사망 애도 및 대남비방 등을 선택하지 않은 민심이 과연 잘못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