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욱 시인·달전초 교사

강신주의 책을 몽땅 구해 읽었다.`철학, 삶을 만나다`부터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까지 지난 몇 달간 열독(熱讀)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대학 시절, 철학 개론을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칸트가 어쩌고 저쩌고, 니체가 어쩌고 저쩌고…. 노 교수의 강의는 그야말로 시곗바늘에 쇳덩어리를 매달아 놓은 듯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고문과 같은 시간을 견디기 위해 시집이나 소설을 뒤적거렸다. 몇몇은 강의실을 빠져나가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고 대리출석도 빈번했다. 그렇게 나의 첫 철학수업은 허망하게 막을 내렸다.

각인이란 참으로 무섭다. 이후 철학을 보는 내 시선이 힐난에 가까워진 것이다. 삶과 유리된 쓸데없는 없는 학문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으니 오죽했으랴. 그때 노 교수는 미처 몰랐거나 잊어버렸던 모양이다. 철학이든 삶이든 문학이든 `나와 우리`의 `지금, 여기`의 문제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모든 게 허망하다는 것을.

강신주의 철학은 분명 `지금, 여기`의 철학이다. 엄청난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니체를 라캉을 임제를 이지를 장자를 레비나스를 우리 앞에 한 명씩 불러 앉힌다. 그들과 강신주와 독자가 삼자대면하는 형국이다. 특히,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서는 48명의 철학자를 만나 볼 수 있다. 그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들의 음성이 `지금, 여기`의 `나와 우리`에게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는 사람의 처음 모습이고, 동심은 사람의 처음 마음이다. 처음에는 견문이 귀와 눈으로부터 들어와 우리 내면의 주인이 되면 동심이 없어지게 된다. 자라나서는 도리가 견문으로부터 들어와 우리 내면의 주인이 되면서 동심이 없어지게 된다. 이러기를 지속하다 보면, 도리와 견문이 나날이 많아지고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이 나날이 넓어진다. 이에 아름다운 명성이 좋은 줄 알고 명성을 드날리려고 힘쓰게 되니 동심이 없어지게 된다. 또 좋지 않은 평판이 추한 줄 알고 그것을 가리려고 힘쓰게 되니 동심이 없어지게 된다”

윗글은 이지(李贄, 1527~1602)의 책 `분서`에 실린 `동심설`이다. 이지는 자신의 책에 `분서(焚書)`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름 그대로 `태워버릴 책`이라는 뜻이다. `분서(焚書)`는 벗들의 물음에 대한 답장으로 당대 학자들의 폐단을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글로 채워져 있다. 이지의 원래 이름은 재지(載贄), 호는 탁오(卓吾)이다. 유불선(儒彿仙)과 이슬람교, 서구의 기독교까지 두루 통달했던 이지는 급진적 반봉건사상으로 명나라의 저주받은 철학자, 이단으로 불렸다. 그가 왜 당대에 철저하게 소외당하고 이단으로 불렸는지는 아랫글을 보면 알 수 있다.

“유불선은 모두 같은 이름일 뿐입니다. 공자는 사람들이 명성을 좋아하는 줄 아셨기에 명교로 그들을 유인하셨고 석가는 사람이 죽음을 무서워한다는 걸 아셨기에 죽음으로 그들에게 공포를 주셨고 노자는 사람이 생을 탐하는 줄 알았기에 불로장생으로 그들을 유인했습니다. 모두 부득이해 우선은 권도로 명색을 세우고 그것으로 후인들을 교화하고 유인했지만, 그것이 진실은 아니었습니다”

당대 학자들의 측면에서 본다면 비분강개할 말이다. 하지만 이지의 핵심은 성리학적 교조주의자들이 만들어 놓은 공맹의 우상화에 대한 경고였다. 이지는 무엇보다 개인의 자유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을 강조했다. 이지가 동심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성인의 가르침을 읽었으나 성인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공자를 존경했으나 왜 공자를 존경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알지 못했다. 그야말로 난쟁이가 광대놀음을 구경하다가 사람들이 잘한다고 소리치면 따라서 잘한다고 소리를 지르는 격이었다.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정말로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서 짖어댔던 것이다. 만약 남들이 짖는 까닭을 물으면 그저 벙어리처럼 쑥스럽게 웃기나 할 따름이었다”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정말로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다, 라는 구절에서 숨이 턱, 막힌다. 앞의 개가 짖으면 따라 짖었던 개 한 마리. 그 개 한 마리가 바로 나였구나, 생각하니, 어디 개구멍으로 숨고 싶어 몸서리가 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