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층이 이어진 석회암 연못, 雪山 보듯 `대장관`

▲ 파묵칼레 온천은 작은 논만한 석회암 연못이 테라스 형태로 층층 이어져 있다. 한국의 다랑이 논을 연상하게 된다.

오후 8시 카파도키아 네이부쉐르에서 터키의 남서부에 있는 셀주크행 버스를 탔다. 짐칸에는 장거리 버스 특유의 여행객 가방과 배낭이 잔뜩 실렸다. 내 자리는 뒷자리 왼편 창가다. 버스는 9시 30분 휴게소에 잠시 멈췄다. 이후 나는 잠이 들었다. 새벽 두 시 버스는 `키르아즐리바체(KIR AZLIBAHCE)` 휴게소에 도착했다. 출발 후 6시간 후다. 몇 번 쉰 것 같은 데 잠결이라 쉬었다는 느낌이 없다. 기사가 바뀐다. 장거리를 한 사람의 기사가 운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곳 휴게소에서 다른 기사가 운전석에 앉고, 안내하는 차장도 바뀐다. 휴게실에 들러 차 한 잔 주문했다. 7시간의 한국과 시차를 따져본다. 한국은 오전 9시다. 출근을 마친 사람들이 일에 빠져들기 시작할 때다.

차는 다시 출발하고 왼편 하늘에는 별들이 선명하게 빛난다. 새벽 5시 50분, 우리의 목적지`데니즈리(DEMIZLI)`에 도착했다. 원래 셀주크 가까이 있는 쿠산다시 숙소에 짐을 보관하고 이쪽 파묵칼레로 오려했던 계획이었으나 그 방법은 시간을 많이 낭비한다 하여 데니즈리에서 내리게 되었다.

 

파묵칼레 노천온천

파묵칼레까지 가는 돌무쇠(소형버스)를 탔다. 6시30분 출발한 버스는 50분에 짐을 맡길 수 있는 파묵칼레 여행사에 도착했다.

“잘 오셨습니다.”

여행사 직원이 제법 한국말을 구사한다. 빵과 커피로 아침을 해결하고 골목을 조금 걷자 설산같은 흰 산이 눈앞을 가린다. 마을과 산과 이어진 바닥에는 물이 고였다. 바로 그 유명한 파묵칼레 온천이다. 이곳 역시 세계문화유산지역이다.

`히에라폴리스`의 대극장·공동묘지

숱한 지진속에서도 원형 잘 보존해

구전속 성 빌립보 교회·다리도 감상

우리나라 다랑이논 형태의 온천

부채 모양으로 흘러내려 형성돼

온천연못속 푹신함에 피로가 싹

파묵칼레(PAMUKKALE)

파묵은 목화, 칼레는 성을 뜻한다. 목화성. 얼마나 푹신푹신한 땅이면 목화성이라 이름을 붙였을까. 사실 파묵칼레는 부드럽고 따스하다. 겨울철임에도 찬기가 없다.

논두렁 같은 곳에 건물 한 채 놓여 있다. 표를 끊고 천천히 비탈길을 오른다. 곳곳에서 하얀 김이 솟아오른다. 손으로 물을 만져본다. 따스하다.

그 때 눈에 띄는 글씨

`You are only allowed to walk on the cascades in this area. Please take your shoes off. 이곳에선 신을 벗고 허락된 길로만 다니세요.`

안내문 중`cascades`란 단어 뜻을 상상해 본다. 사전을 찾았을 때 이 단어의 뜻이 `여러 단으로 된 작은 폭포`란 의미를 갖고 있음을 알았다. 파묵칼레 온천은 작은 논만한 석회암 연못이 테라스 형태로 층층 이어져 있다. 한국의 남해 남면의 가천리, 강원도 높은 산비탈, 지리산 중턱 다랑이 논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운동화와 양말을 벗고 석회암 연못에 발을 담근다. 발밑이 따스하고 푹신하다. 시원하다. 성수기가 아니라 관광객이 그리 많지 않다. 온천수 배출구에서 그 흐름을 조정하여 일정한 곳에 물이 고여 넘치도록 만들어 놓았는데 물이 없는 빈 연못이 더 많다.

햇살 강하게 내려쬐는 날 눈처럼 흰 빛에 선글라스는 필수다. 하얀 석회암은 온천수에 함유된 칼슘 중탄산염 성분이 이산화탄소와 물, 산소와 결합해 응결된 현상이다. 기원전부터 이런 현상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물 바닥은 조금씩 높아지고, 흘러나온 물은 부채꼴 형태로 흘러내린다. 그 모습 자체가 흰 설산을 연상시키는 장관이다.

 

히에라폴리스 대극장(원형극장)

`히에라폴리스`의 대극장·공동묘지

숱한 지진속에서도 원형 잘 보존해

구전속 성 빌립보 교회·다리도 감상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파묵칼레 관광에서 놓쳐서는 안 될 곳이 온천수 위쪽의 `히에라폴리스(HIERAPOLIS)`다. 성스러운 도시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 히에라폴리스는 기원전 2세기께 페르가몬 왕국의 초대 텔레포스왕의 아내 히에라를 기리기 위해 이곳을 `히에라폴리스`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하에라폴리스 박물관을 제외하곤 모든 구경거리들은 노천에 널려 있다.

박물관은 이곳에서 출토된 조각상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을 나왔을 때 공간이 넓어 어디로 발을 옮길지 망설이게 된다. 박물관 옆길로 온천시설 `테르말`을 지나 `아폴로신전`을 거쳐 `대극장(원형극장)`으로 뚫린 길을 밟는다. 사면에 산재한 옛건물 파편이 유구한 역사의 마디마디로 넘어져 있다. 지진과 세월의 상처에 쓰러진 것들이다.

대극장은 히에라폴리스 지역 중 높은 지역에 있다. 현재 무대 뒤쪽으로 입장하게끔 되어 있다. 옛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는 대극장은 기원전 2세기경 하드라아누스 황제에 의해 세워져 206년 베르스 황제 시대에 완성하였다. 중앙 세 번째 좌석에서 여섯 번째 좌석까지의 공간에 설치된 귀빈석이 특별나다. 원형 대리석으로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도록 선을 그어놓은 것 같다. 아래층 22단, 위층 25단으로 무대 위 배우의 음성이 잘 퍼져나갈 수 있도록 꾸며졌다. 1만5천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오늘과 같은 과학 시설 없는 상태에서 뒷자리까지 소리를 전달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선 나름대로의 과학적 측량과 건축기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래위로 통행할 수 있는 통로도 8개나 된다. 당시 발달한 토목건축 현장이다.

내 자신이 청중이 되어 중간 자리에 앉았다가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뒷자리로 옮겨본다. 과거에도 오늘날 공연장과 같이 표를 예매했을 것이다. 뒤에 쳐진 돌담 울타리가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한 눈에 무대가 내려다보이고, 무대 뒤편으로 저 밖 낮은 온천 지역이 보인다. 더 멀리 공간을 달리하여 이곳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이 보인다.

 

네크로폴리스(공동묘지)

산정의 눈이 하얗다. 여러 번의 지진에 많은 것들은 폐허가 되었는데 이곳만은 유별나게 생생하다. 원형 극장을 나선 나는 윗길로 발을 옮겼다.

그 길은 네크로폴리스(공동묘지)다. 헬레니즘 때의 고분, 로마시대의 석관, 무덤 등이 널려 있다. 아나톨리아에서 가장 보관 상태가 좋은 묘지란다.

그 곳에서 마을로 향하지 않고 올리브 과수원이 있는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마르티리움(성 빌립보 교회)을 바라본다. 성 요한과 함께 하느님 말씀 전파에 앞장 선 성 빌립보는 우상 숭배로 뱀을 모시고 있는 이곳 이교도들의 우상인 뱀을 십자가로 죽였다. 이 행동으로 빌립보는 처형당하게 된다. 이 이야기가 성 빌립보 성전을 통해 입으로 전해지고 있는 교회다. 밑으로 성 빌립보의 다리가 있다. 과거에는 물이 많이 흘렀는지 놓였던 다리는 지진 등으로 파괴되어 보이지 않는다.

성벽을 따라 내려가며 보게 되는 석관들. 최대의 묘지터다. 여러 형태의 무덤이 보인다. 우리나라 봉분같은 무덤도 있다.

목욕탕, 바실리카, 도미티안 문….

북쪽 목욕탕과 많은 나무들이 자라는 부근 묘지까지 걸어가며 역사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과거에서 미래를 연결하는 현재가 역사의 중심축이란 생각도 해본다. 그 이유는 살아있는 내가,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 사람이 살았던 터에서 미래를 발견하는 힘을 얻는다는 것은 지혜다. 우린 그런 지혜를 늘 필요로 하지만 현실에 발 묶여 과거와 미래를 놓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11시40분 파묵칼레를 출발한 버스는 새벽에 내렸던 데니즈리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곳 대합실 부근에서 터키식 캐밥으로 점심을 때운다.

 

성 빌립보의 다리

우리가 탈 버스는 데니즈리 발 12시 35분 버스였다. 목적지는 셀주크(SELCUK). 세 시간 걸린다고 했다. 두 도시 다 터키의 서쪽 바닷가에 있다. 버스는 비옥한 땅을 밟는다. 양쪽으로 과수원이 이어진다. 올리브 과수원, 오렌지 과수원, 오렌지는 겨울철인데도 아직 푸른 이파리 사이로 노란 색을 띠고 있다. 길거리 가로수도 오렌지다.

2시20분 `아이든(AYDIN)`에 도착했다. 손님이 내리고 탄다. 차장이 노인이 들고 갈 짐을 짐칸에서 꺼내 휴게실까지 옮겨준다. 터키인의 보편적인 정서다. 터키인의 친절함은 여행하며 자주 보게 된다.

버스 안은 금연이다. 그렇기 때문에 버스가 쉬면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나가 담배를 피운다. 버스 출발을 기다리는 동안 시 한 편을 메모한다. 여행 중 두 번째로 쓰는 시작(詩作)이다.

<괴레메 바위>

너의 아픔을 알고 있는 것은 우주

거룩하다는 것은

세월의 벽돌 위 십자가를 반듯이 세우는 일

맨살 한 부분 찢어

세월로 찧으며

피처럼 진하게 흐르고 있는 햇살 한줌을 만난다

바람 흐름에 손톱 발톱 깎듯

눈비 쏟아짐에 정강이 뼈 동강난 괴레메 바위

네 몸 속 눈물 마른 지 너무 오래

해가 지는 늦은 오후

별 찰랑이는 한 겨울 자정 12시

잠시 네 곁에서 새가 된다

오래 버틴다는 것은 상처를 깁는 일

흐른 시간 안에 먼저 흐른 시간을 자꾸 기억하는 일

2시30분 버스는 `아이든(AYDIN)`을 출발했다. 왜 난 셀주크로 향하는 버스에서 괴레메를 다시 떠올렸을까? 카파토키아 괴레메의 강렬한 인상이 아직 나의 마음 사진첩에 포개져 있기 때문일까? 달리던 버스가 멈춘 때는 3시20분. 목적지 셀주크다. 카파도키아에서 밤새 달려와 본 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 역시 그 위에 아름답게 포개질 것이다.

내일은 셀주크 가까이 있는 그 유명한 에페소와 그 주변을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