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19년 차를 맞는 한강(42)이 첫 소설집`여수의 사랑`(문학과 지성사)을 다시 펴냈다.

그간 다섯 편의 장편소설과 두 편의 소설집을 펴낸 중견 작가 한강은 이 책을 다시 내면서 이십대 “아무도 모르게 숨겨둔 사적인 경험”을 돌아보자, 되살아나는 기억이 “종내에는 숨 막히도록 생생하게 가까워오는 것을 느껴 여러 번 쉬어가야 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여수의 사랑`은 1995년 출간 당시 초판 해설에서 김병익이 “그녀는 왜 삶의 치욕들을 헤집어, 그들의 고통스런 운명을 잔인하게, 우리 앞에 던져주는가?”라고 말했듯 작가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버리고 지운 기억을 되살리는 지난한 시간을 겪게 한다. 안간힘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왔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들은 `인간`이라는 상처를 안고 살아온 아픈 시간을 깨우는 뼈아픈 각성의 시간이다.

한강의 소설을 잡는 손길은 어쩐지 조심스럽고 어쩐지 시작부터 아슴아슴 통증을 일으킨다. 한강의 인물들은 떠나고, 버리고, 방황하고, 추락하고, 죽음 가까이에서 이 세상에 없는 것들을 그리워한다. 그러면서 존재의 `살아 있음`을 일깨운다. 그러나 그렇게 매순간 `깨어 있기`란 얼마나 어려운 수도의 길인가. 한강이 그려내는 삶의 외로움과 고단함이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여수는 어딘가 상처 입고 병든 이들이 마침내 이를 서러운 마음의 이름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기쁨에 젖어 외쳐댈 수 있는 환한 마음가짐이기도 하지만 끝내는 이룰 수 없음을 너무나 분명히 알기 때문에 간절한 소망으로 새기는 어두운 느낌이기도 하다. 한강은 어떤 여수의, 어떤 사랑을 말하고 있는가. 여수는`여수의 사랑`에서 자흔이 태어난 곳일지도 모르며 정선이 버리고 떠나온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짧은 생애임에도 한없이 떠돌며 살아온 사람의 피곤한 `여수`가 역력한 자흔이나, 스스로가 버렸다기보다는 그곳에서 쫓겨나 서울에서 힘들게 살아온 정선이 다시 가고 싶지 않았지만 끝내는 향하지 않을 수 없는 궁극의 지점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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