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절한 사랑 간직한 천년의 역사 속을 거닐다

지난번에 의상대사와 선묘 낭자의 사랑이 얽힌 `부석`이라는 바위에 얽힌 전설을 잠깐 언급했는데 좀 더 자세히 언급해보자. 여행에서 어떤 곳이던 전설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으니까 말이다. 멀리 한쪽에서 열심히 설명하는 해설사의 이야기를 잠시 빌린다.

신라 문무왕 원년(661년)에 의상대사가 화엄학을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로 갔을 때 의상을 연모한 선묘라는 낭자가 있었다고 한다. 스님이 장안 종남산에서 지엄 문화에 10년 수학을 하던중 당 고종이 신라와의 전쟁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선묘가 의상대사가 간 바다에 몸을 던져 용으로 변신해 스님의 배를 호위해 무사히 귀국하게 한다. 그 후 의상대사가 화엄을 펴기 위해 이곳 봉황산 기슭에 절을 지으려고 하니 이곳에 살고 있던 많은 도둑들이 방해하자 선묘신룡이 나타나 조화를 부려 바위를 공중에 들어 올려 물리쳤는데 그 바위를 `부석`이라고 불렀다 한다.

여행의 참맛 선사한 의상대사의 전설 `부석`과 `선비화`에 감개무량하고…

세상을 다 가진 듯 드넓은 세계로 이끌어준 무량수전 앞 절경에 또 감탄

 

해설사의 말로는 바위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어 실을 넣어 당기면 걸림 없이 드나들어 두 바위사이가 공중에 떠있다고 하지만 사실여부가 중요한 일은 아니다. 전설은 그렇게 믿을 때가 더 가치가 있다고 보니까.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도 고적지나 명승지마다의 전설이 내가 어릴 적에는 참 많았던 것 같은데, 요사인 그런 이야기들이 참 인색해진 것 같다. 여행에서의 참맛은 바로 이런 전설들인데 말이다.

몇 년 전 중국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은 그들은 유구한 역사 속에서 아직도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길가에 홀로 서있는 비석의 시 구절 하나에도 의미를 두고 관광객을 다시 찾게하는, 문화에 대한 자부심 하나는 정말 배우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소주를 여행하면서 들은 많은 이야기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한산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곳은 당나라의 시인 장계의`楓橋夜泊`이라는 시가 새겨져 있는 비석 하나로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지게 하는 곳으로 月烏啼霜滿天 (달은 지고 까마귀는 우는데 하늘 가득 서리가 내리네)江楓漁火對愁眠 (풍교에는 고깃배 등불을 마주하여 시름 속에 자고) 姑蘇城外寒山寺(고소성 밖 한산사에는) 夜半鐘聲到客船 (한밤중에 종소리가 객선에 이르네) 라는 시가 그것이다. 소주의 상징인 호구(虎丘). 원래 이름은 해용산(海涌山) 이었는데, 호랑이가 웅크려 앉아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지금의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춘추시대 오왕인 합려가 이 곳 연못 아래에 묻혀 있다고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합려의 무덤을 만들 때 관 속에 검 3천개를 함께 묻었다고 하여 혼란했던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이 이 검들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보는 앞에서 도굴을 시작했는데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뛰쳐나와 도굴은 중단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이곳에 물이 들어차서 연못이 되었고, 돌 한쪽부분에 검지(劍池)라는 한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또한 언덕 정상에는 호구 탑이 있는데, 높이가 47.5m이며 수나라 때 지어진 것으로 소주에서 가장 쉽게 눈에 띄는 건축물이다. 합려의 무덤에 보물이 많다고 믿는 사람들이 무덤을 파헤치려 할 때마다 조금씩 기울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한수의 시가 이렇듯 작은 사찰을 유명세로 만들고, 전설을 확인하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있는 중국인들의 기예가 부러울 따름이었다.

 

다시 부석사 경내를 좀 더 자세히 소개해 보자.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 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으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로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라고 한다. 무량수전 앞에 있는 석등은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석등으로, 불을 밝히는 화사석 4면에 정교하게 새겨진 보살상은 보는 이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보통은 석등대신 탑을 세우는 게 정석인데 이곳 부석사는 석등이 서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광명극락의 세계를 밝히고자 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한다고 했다.

 

무량수전 앞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드넓은 세계로 내 눈에 들어온다. 긴숨을 들여 마시며 태백산 줄기의 기를 다 받아들이는 기분으로 삼층석탑옆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의상대사의 진영을 모신 조사당 건물이(국보 19호) 나오는데 지난번에 못본 것을 오늘은 꼭 볼 것이 있다. 바로 조사당 처마 밑에 닭장같이 울타리가 쳐져 있는것이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중국의 한산사나 호구탑과도 비교되지 않는 그 유명한 전설,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꽃았더니 그 지팡이에서 잎이나고 자라났다는 전설의 꽃 `선비화`. 처음 보는 나도 신기하리 만큼 잘 자라고 잎이 무성했다. 많은 사람들이 선비화를 보기 위해 찾아와 자꾸만 만지다 보니 훼손의 우려가 있어 철망을 해놓은것이 다소 맘이 걸렸지만 어쩌랴…. 이렇게라도 볼 수 있다는 것이 감개무량할 따름인 것을….

부석사는 경내를 걸어 다니는 자체가 천년의 역사를 경험하는 일이다. 무량수전, 조사당, 조사당벽화, 소조여래좌상, 석등 등 모두가 국보로 지정돼 있다. 그래서 부석사는 나의 짧은 언어로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는 자체보다 노오란 은행잎이 절정을 이루는 가을이나, 흰눈이 드문드문 보이는 겨울에 이 곳에 한번 들러, 아름다운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애틋한 사랑과, 선비화의 전설을 직접 보고, 느끼며 경내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