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살로메 소설가

모 기관 직원들을 상대로 독서토론을 한다. 시간 내기가 여의치 않은 직장인들이라 대부분 마음만 앞선다고 했다. 해서 주당 한 권은 무리이고 두 주에 걸쳐 한 권씩 토론하기로 했다. 그들 부담도 덜어주고 책을 사랑하는 게 우선이다 싶어 선 토론 후 독서가 되어도 좋겠다고 말했다. 말인즉, 내가 책 다이제스트와 토론 주제를 짚어 주면, 그들이 다음 시간까지 읽어와 토론하는 방식이다.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열망이 강했으므로 나는 최대한 그들의 조력자가 되어 보기로 한다. 부디 그들이 업무에 시달리지 않고 책 읽기 도전이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랄 뿐.

도서 구입 담당 직원히 족히 몇 백 권은 되어 보이는 도서목록을 작성해왔다. 토론 도서 선정에 참고가 되었으면 하고 정성스레 준비해온 리스트였다. 인문 · 역사 · 문학 쪽보다 자기개발 · 건강 · 에세이 분야가 더 많아 보인다.

자기 개발서는 개인적으로 그리 선호하는 편이 아니다. 인문, 역사 쪽을 읽다 보면 그 분야는 절로 따라오는 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고, 그쪽 분야는 독서의 다양한 기능 가운데 치열하게 살아남기 위한 방편만 강조하는 것 같아 거부감이 인다. 유독 직장인들에게 강요되는 자기 개발서는 경쟁만을 부추기는 것 같아 불편하다. 변변한 직장을 다녀본 적 없는 나로서는 그쪽이 절실하지 않으니 별 흥미가 없다.

어쨌거나 그 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게 그 중에서 독서 토론 방향에도 맞고 내 취향과도 멀지 않은 책을 선정했다. 가장 먼저 손이 간 것이`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이다. 장정일 작가가 쓴 독서일기였다. 독서광인 그가 쓴 독서 리뷰라면 충분히 사서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계획표를 짜면서 느긋하니 4월 말에 이 책을 넣었다. 작가가 권하는 책 중 소위 필이 꽂히는 게 있으면 내가 먼저 읽고 회원들께 그 책도 소개할 요량으로.

독서광답게 작가는 소설가일 때보다 서평가일 때 더 신뢰가 간다. 읽지 않고 책을 평하는 사람 이야기가 이 책에도 나오는데, 나도 그의 소설에 대해선 읽지 않으면서도 한 마디 한 격이 되어 버렸다. 왠지 그의 작품은 소설보다는 초기 시와 꾸준히 발표하는 독서 일기에 손이 가는 편이다. (미안도 하여라. 하지만 작가로서 신뢰하고 있으니 서운해 하지 마시길, 작가여.)

이번 독서일기도 흥미진진하다. 여담이긴 하지만, 방금 읽으면서 안 사실인데 난 그가 애독가이긴 하되 책 수집가는 아닌 줄 알았다. 왜냐면 나는 결코 책 수집가는 될 수 없고(될 마음도 없고) 애독가이기를 바라는데, 장정일 작가도 그런 줄 알았다. 한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책 수집가이기도 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일단 그는 확실히 애서광이다. 그럼 애서광이면 수집가이기도 한 것일까? 작가가 대답하진 않았지만 수집가는 아닐 것이라 확신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수집가가 책을 읽게 되면 모으는 열정이 반감되고 말테니까.

책 수집가는 독서의 기능인 읽기로서 모으는 게 아니라 운명의 무대를 만난 것처럼 책 자체에 의미 부여를 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것의 실용성에는 관심이 덜하다. 이를 테면 비싼 도자기에 밥 퍼먹고, 술 따라 마시려고 도자기 수집가들이 그것들을 소유하려는 게 아닌 것처럼 책수집가들 역시 밑줄 긋고, 접어 가며 제 머리 속에 지혜를 담으려 책을 수집하지는 않는다. 수집 자체가 고도의 예술적 허영 쯤으로 허용된다면 말이 될까?

책수집가 되기는 어렵다. 경제력, 심미안, 예술적 허영 등이 갖춰져야지만 가능하다. 그에 비해 애서가는 책을 읽고자 하는 열망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그마저도 시간이 허락해야 하니 쉽지 않다. 어려운 책사랑의 길에 동참한 회원들이 책 맛을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아 본다.

각설하고 당신이 얼마나 책을 사랑하는지 그 호기심을 충족하고 싶다면 장정일 작가의`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을 사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