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외하던 비잔틴예술 최고 걸작을 만나다

▲ 아야 소피아 성당 전경

6개의 첨탑(미나레, minaret).

술탄아흐메드 사원의 푸른 지붕 위 6개 첨탑이 블루 모스크임을 안내한다. 블루 모스크의 탄생은 그 앞에 우뚝 서 있는 성 소피아 성당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솔탄아흐메드 지역으로 이곳 모든 건축물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오스만 제국 14대 왕인 술탄아흐메드 1세는 성 소피아 성당보다 멋진 사원을 건축가 마흐메드 아가에게 짓도록 했다. 1609년 착공해 1616년 완공한 블루 모스크는 술탄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수많은 황금이 제공되었다. 그런데 황금(알툰 - Altun)과 6(알트-alti)란 숫자는 동음이의어로 건축가 마흐메드 아가는 첨탑을 6개로 지으라는 줄 알아들었다.

착각이었을까?

아니면 건축가의 의도적 오류였을까? 창작물에는 창작자의 의도적 오류로 그 작품이 보다 빛을 발휘하는 경우가 있다. 하나의 에피소드로 이야기되고 있는 블루 모스크 첨탑 이야기는 그 곳을 찾는 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 블루 모스코 내부

벽면과 돔에 사용된 청색의 이즈니크 타일 2만 1043장은 이 사원의 애칭(愛稱) 블루 모스코로 불리도록 하였다.

블루 모스크 사원을 바라보며 걷는 길은 로마 시대 마차 경주장이다. 일명 `히포드롬`.

U자 형태의 로마 시대 대경기장으로 세로 500m, 가로 117m의 넓은 공간이다. 그곳에는 오스만 제국 시절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 해시계, 조각상 기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원전 15세기 이집트에서 만들어졌다는 25.6m의 오벨리스크(테오도시우스 1세의 오벨리스크라 불림 - 이것과 비슷한 것을 난 이집트 룩소르 카르나크 신전에서 만났다.), 479년 그리스 델피의 아폴론 신전에서 가져온 8m 높이의 뱀머리 오벨리스크,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7세가 940년 만든 콘스탄티누플 오벨리스크가 있다.

그 곳 주변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구경한다. 여행은 걸어야만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다. 손 군과 오 군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은 이야기를 나무며 걸고 또 걷는다. 그러면서 감탄한다.

요즘도 축제 등의 많은 행사를 갖는 장소가 `히포드롬`이다.

히포드롬을 거쳐 블루 모스크로 갔다. 블루 모스크 내부는 앞서 방문했던 슐래이마니예 사원 내부와 별다른 것이 없다. 다만 청색 계통의 타일을 많이 사용했다는 것이 앞에 찾았던 사원과 다를 뿐이다.

 

▲ 터키 전통복을 입고 차를 파는 상인

예배실로 들어가며 구두를 벗는데 우리글이 눈에 띈다. `블루 모스크의 복원을 기원합니다. 약간의 기부를 부탁합니다.`

7개의 외국어와 함께 종이에 써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관광객이 많다는 일례다. 바닥에는 넓은 카펫이 깔려 있어 관람하는 동안 양말 밑이 푹신하다. 모든 모스크는 신을 신고 들어설 수 없다. 신도들은 모스크에 들어가기 전에 손과 발, 마음까지 깨끗이 씻는다.

높이 43m의 돔 주변에는 260여 개의 창을 뚫어 자연 빛이 잘 들어오도록 했다. 대부분의 모스크 내부는 비슷하다. 그리스 정교회처럼 내부에 성상 등의 상징물을 설치하지 않는다. 돔을 세우기 위한 기둥이 몇 아름 돼 보인다.

블루 모스크 내부를 둘러본 후 맞은편에 있는 아야 소피아로 발을 옮겼다.

발길을 옮기는 내 발걸음 잎으로 심장의 박동이 느껴진다. 아! 아야 소피아!

오래 전부터 내가 보고 싶던 성당을 보게 된 설렘으로 심장의 박동이 손끝까지 이어진다. 화창한 날씨다. 걸음을 옮기는 길로 세계 곳곳에서 온 관광객들이 발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붐빈다.

일찍이 그리스 정교회의 총본산이었던 곳.

비잔틴 예술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건축물 아야 소피아. 학교 다닐 때였다. 세계사를 배우며 후일 이스탄불에 가게 되면 꼭 아야 소피아 성당을 구경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꿈이 이뤄진 것이다.

천천히 발을 옮기며 카메라를 잡는다.

아야 소파아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찰칵! 찰칵! 찰칵!

맑은 날처럼 마음과 몸이 경쾌하다.

1934년이었다. 아야 소피아의 덧칠된 이슬람 흔적을 지우고 박물관으로 문을 연 때는….

아야 소피아는 537년 완공됐다. 360년 콘스탄티누스 2세가 건립한 교회가 이 성당의 출발점이다. 비잔틴 제국이 1453년 오스만 터키에게 정복당한 후 이 성당은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었다.

 

▲ 블루 모스크

아야 소피아로 가면서 성당을 바라본다. 둥근 돔의 지붕이 생각을 초월한다. 엄청 크다.

터기 전통의상을 입은 두 명이 물통(석류차)을 어깨에 메고 관광객과 사진을 찍는다. 사진 찍는 것은 공짜지만 물통에 들은 석류차를 팔아주어야 한다. 많은 관광객이 그들과 함께, 아야 소피아 또는 블루 모스크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다.

분명 짧은 시간 찍힌 사진은 후일 추억으로 마음 밭에서 자랄 것이다.

푸른 색 잔디가 깔린 정원을 지나자 아야 소피야 입구다. 검문은 철두철미했다. 들어가기 위해선 짐 검사는 물론 온몸 X선 검사까지 받아야 한다. 티켓을 끊고 들어가려 줄을 섰을 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앞에 있다.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다. 이슬람 믿음을 갖고 있는 땅이지만 기독교 믿음을 갖고 있는 유럽 관광객이 제일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터키 이스탄불을 경유하는 여행객 중 이곳을 빠뜨리고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건물의 왼편을 통해 들어가게 된 우린 우선 1층에 머물며 천정 돔을 본다. 돔 높이는 약 56m, 지름 또한 33m로 거대하다. 중앙에 태양이 그려져 있는 돔은 40개 석재가 둥근 천장을 받치도록 만들었다. 그 사이 있는 창문을 통해 은은한 빛이 돔을 돋보이게 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돔이란다. 천정 돔 안에는 내가 알 수 없는 아랍어 글자가 보인다. 동로마 수도 콘스탄티노풀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덧칠일 것이다.

동행한 손 군과 오 군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은 넓은 공간에서 멍하니 사방을 둘러본다. 흩어져 구경한 후 한 시간 뒤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취향에 따라 길게 또는 짧게 볼 것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나는 아래층 벽면부터 유심히 살펴보기로 마음 먹는다. 벽면 곳곳에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 그리고 사도들을 그린 성화가 눈에 띈다.

황제의 문, 성전에 들어가는 정문이라 할 수 있다.

▲ 아야 소피아 내부 `마리아의 손 모양`

문 안쪽 위 벽화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축복을 내리는 예수의 모자이크`상이 그런대로 제작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예수의 오른손에 들고 있는 책에는 `너에게는 평화를, 나에게는 세계의 빛이 되라`란 글귀가 씌어 있다.

모스크가 된 후 설치한 `마흐라브`는 성지 메카 방향에 자리 잡았는데 온통 금색이다. 그 곳과 대각선 쪽에 베르가마의 항아리가 있다. 대리석으로 만든 큰 항아리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또 하나 세인의 관심을 끄는 곳은 위층으로 올라가는 방향 입구 지주에 붙여진 동판이다. 동판의 가운데가 뚫려 있다. `마리아의 손 모양`이라 일컫는 곳으로 관광객을 안내하는 가이드는 그곳에 멈춰 그곳에 대한 설명을 빠뜨리지 않는다. 엄지를 그곳에 넣고 한 바퀴 돌리는 시범까지 보인다. 그렇게 하면 소원 성취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어느 사람인들 꿈이 없으랴. 그 곳을 지나는 숱한 사람들이 그 흉내내기에 그 곳 동판이 닳을 정도로 하얗게 윤이 나 있다.

돔과 가까운 위층으로 오르는 길은 `ㄹ` 모양의 비탈진 길이다. 계단이 아니다. 바닥이 반질반질하다. 2층 후진 돔에 어린 예수를 무릎에 앉힌 성모 마리아상이 모자이크 돼 있다.

하느님을 믿는 신도들의 신심을 알 수 있는 성상이다. 하느님을 찬양하는 성당이었음을 보여주는 성화를 이슬람교도들이 파괴한 흔적이 곳곳에 있다. 원본을 탁본하듯 되살린 성상을 액자에 넣어 벽면 앞에 전시했다. 제대 오른쪽 2층 회랑에는 여러 점의 모자이크가 있다.

그 중 `디시스(Deesis)`상은 아야 소피아의 과거와 현재를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직사각형 형태의 오른쪽 위모서리에서 왼쪽 아래 모서리로 잇는 성화는 세월의 흐름 속에 겪은 풍랑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가운데 예수의 성상과 오른쪽 세례자 요한의 모습, 왼쪽 얼굴 부분만 드러난 성모 마리아의 모습 역시 과거에서 오늘까지 오며 겪은 풍상을 엿보게 한다.

성전 가운데에 서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묵상에 빠져본다.

믿음이란 무엇일까? 서로 다른 종교, 서로 다른 사상, 서로 다른 환경. 그런 것들의 차이에서 사람은 반목하고, 파괴하고, 살생을 범하지 않았던가.

그 사소한 차이의 갈등은 아직도 우리 인류에 전쟁, 이별, 슬픔 등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는가?

가볍게라도 눈 맞춤해야 할 부분이 많은 아야 소피아를 빠져나가다 다시 되돌아간다.

나를 끌어당기는 어떤 손길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성전의 돔과 돌기둥, 햇살 하얀 유리창, 벽화를 바라보곤 목례를 하듯 고개를 숙이고 출구로 향한다.

헤어졌던 손 군과 오 군을 만난다. 그들의 눈에도 많은 느낌이 들어 있다.

말로 표현 못할 많은 감정이 눈에 고여 있음을 나는 눈치 챌 수 있었다. 이심전심이란 용어가 그 낯선 곳에서 함축적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잇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