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최고 술탄의 욕망 `더 높은 곳을 향하여`

▲ 슐레마니에 사원에 본 `이스탄불의 보스포루스 해협, 갈라타 교에서 본 `슐레이마니에 사원`, 그랜드 바자르 내부, 슐레이마니에 사원 천장.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한 해의 끝날을 나는 이스탄불에서 맞고 보낸다. 또 새 해 첫날을 동양과 서양을 잇는 이스탄불에서 맞고 보낼 것이다.

호텔에서 눈을 뜬 시각은 오전 3시다. 소변을 보고 다시 잠자리에 든다. 다시 눈 뜬 시각은 6시다. 불을 켜고 오늘 여행할 곳에 대해 책을 읽어본다.

사실 여행지에 대한 사전 공부가 부족했다. 바쁜 일정으로 차일피일 미루다 사전 지식 없이 여행에 합류했다. 그렇다고 무지한 것은 아니다. 오래 전 학교 교육에서 배운 지식이 머릿속 어느 부분을 아직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탄불은 크게 세 곳으로 나눌 수 있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그리고 아시아 쪽이다. 그 세 구역의 해협을 다리와 배로 잇고 있다.

여행할 곳이 너무 많다. 지도상의 구시가 쪽을 훑어본다. 토인비는 이스탄불을 노천 박물관이라 했다. 불루 모스크, 소피아 성당, 지하궁전, 그랜드바자르, 고고학 박물관, 슐레야마니에 사원….

여행은 선택이다.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으련만 여행객에겐 시간이 그리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시간뿐만 아니라 그 시간에는 돈의 지출이 곁들여져야 한다. 시간과 돈의 지출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여행의 성패는 달려 있다.

지도를 짚어보며 몇 군데를 집중적으로 선택하기로 한다. 빼놓아서는 안 될 성소피아 성당, 그리고 불루 모스크, 고고학 박물관을 새해 첫날 구경하기로 결정한다.

아침으로 호텔에서 빵과 과일, 그리고 치즈를 골랐다. 호텔식 뷔페다. 여러 종류의 치즈가 놓여 있어 두 개를 빵에 곁들였다. 먹지 않던 음식이라 조금 두려움이 앞섰지만 이쪽을 여행하면서 즐겨야 할 음식이라 의도적으로 손을 댔다. 아침을 먹는 도중 커피가 제공되었다. 일회용 커피에 젖어 있던 내게 원두커피는 씁쓰레한 맛이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짙은 향이 좋았다.

더불어 국물 대신 오렌지 주스를 컵에 따라 왔다. 맛은 한국이나 이 곳이나 별 차이 없다.

아침을 먹고 밖으로 나갈 때 일행 중 손 군과 오 군이 뒤따라온다. 손 군과 오 군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대학 2학년이다. 동행하잔다. 대학 2학년생으로 오군은 컴퓨터를 전공하고, 손 군은 약대생이다. 잘된 일이다. 낯선 여행지에서 동행자가 있다는 것은 마음의 의로가 된다. 또 택시를 탈 경우에도 경비를 절감할 수 있고 짧은 내 영어에 그들의 영어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들은 숙소와 가까운 탁심 광장 근처에서 구시가로 가는 방법을 찾았다. 탁심 광장은 우리나라의 명동거리와 비슷한 번화가다. 지난 밤 제야 행사가 열린 곳이다. 오늘 구경하기로 한 관광지는 모두 구시가지에 있다. 첫날이기 때문에 지리도 익힐 겸 신시가에서 구시가를 잇는 갈라타 교까지 차를 이용하고 그곳에서 걷기로 했다. 길가에 서 있는 경찰한테 갈라타 교까지 가는 방법을 묻었다. 몸짓 발짓 섞어가며 서툰 영어로 설명하는 경찰의 놀라운 친절에 나는 슬며시 당신 앞에 있는 경찰차를 이용하면 안 되냐고 했다. 안 된단다. 한참 설명하던 그는 안 되겠는지 우리 일행 셋을 경찰차에 타라고 한다.

신나는 일이다.

`테쉐퀴르-탱규!` 하며 경찰차 뒤쪽 자석에 올라탔다. 그런데,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운전대 앞에 앉은 경찰이 시동을 걸지만 차는 끔쩍 않는다. 그는 우리들을 내리라고 하더니 시내버스로 안내한다. 두 정류장 지나 내리면 그곳에서 갈라타 교가 가깝다는 표시를 손으로 한다.

우린 버스를 타고 유럽 화가들의 그림에서 익히 보았던 지중해 풍 지붕을 내려보았다. 붉은 색 기와지붕이 햇살에 반짝였다. 지난 밤 뿌리던 빗줄기는 어디로 간 것인가. 좋은 날씨가 고맙다. 원래 이쪽의 겨울은 우기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날을 기대한다는 것은 바람일 뿐이라는 앞선 여행자의 언질이 떠올랐다.

버스기사가 내리란다. 우린 내려 그곳에서부터 걸었다. 갈라타 교라고 생각하고 걸었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그 다리는 갈라타 교가 아니고 아타튀르크 다리였다. 다리 가운데엔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들이 많다. 잡힌 고기는 고등어도 있고, 꽁치도 보였다.

아타튀르크 다리 앞쪽(구시가지) 제일 높은 지대에 우뚝 솟은 첨탑이 보인다. 지도에서 그곳 건물을 살펴보니 슐레이마니에 사원이다.

우린 그곳을 첫 목적지로 꼬불꼬불 비탈길을 올라갔다. 어느 도시든 높은 곳에 오르면 방위 파악이 쉽고, 다음에 찾아야할 곳을 눈대중으로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높은 곳은 으레 전망대 하나 있어 도시를 내려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도시의 높은 곳에는 모스크다. 우리가 간 길은 슐레이마니에 사원 뒤쪽이었다. 낡은, 오래된 터키 전통 가옥이 눈앞에 펼쳐졌다. 목조건물인데 깨어진 유리가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다.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슐레이마니에 사원 동편에서는 이스탄불의 동편이 훤히 내려다 보였다.

신시가에서 구시가를 잇는 갈라타 교도 눈 아래 있었다. 원래 우리는 갈라타 교를 건너려 했던 것이 그곳보다 북쪽에 있는 아타튀르크 다리를 건넌 것이다.

정문을 찾기 위해 건물을 반 바퀴 돌아야 했다. 둥근 돔 옆의 뾰족한 첨탑이 푸른 하늘을 찌른다. 회당에 들어갈 수 있는 외국인 전용문이 폐쇄되어 광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터키인과 함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겨울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가죽으로 늘어놓은 문을 들치고 안에 들어서자 커다란 돔의 모습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황금빛 돔 표면에는 많은 그림이 그려졌고, 그 둘레는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창문이 뚫려 있다. 또한 돔에서 밑으로 늘어진 초꽂이는 원형으로 둥글게 둥글게 큰사람 키 높이까지 내려와 있다. 동편으로 뚫린 벽면의 유리에 그린 그림이 햇빛에 아름답다.

슐레이마니에 사원은 오스만 제국 최전성기인 슐레이만 1세가 지은 건축물이다. 1520년 왕위에 오른 그는 1566년까지 통치한다. 그는 재위기간 동안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동유럽을 정복한다. 영토 확장과 국력 강화에 앞장선 그는 신의 은총에 감사하기 위해 이 사원을 짓는다. 최고의 건축가인 미말시난을 초빙하여 이스탄불에서 제일 높은 지대에 최고의 건축물을 짓게 했던 것이다.

어느 시대든, 어느 왕조든 강성기에 멋진 건축물을 짓는다.

인도의 샤자한이 타지마할이란 건축물을 지은 것도 그가 강한 힘을 갖고 있을 때였다. 이집트 람세스 2세 역시 그랬다. 강한 왕들은 그들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남들이 모방할 수 없는 건축물을 창조한다.

건축물에서 힘을 느끼게 하는 정치력이 후세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느끼게 하는 장소다. 그 이면에는 백성들의 피눈물이 깔려 있음을 역사를 조금 공부하면 알 수 있다.

슐레이마니에 사원 주변 4개의 첨탑은 술래이만 1세가 오스만 제국의 네 번째 술탄이었던 것을 상징한다.

실내 오른쪽 남쪽에서 이슬람 신자들이 코란을 공부하고 있다. 그들은 코란을 공부하며 마호멧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려 노력할 것이다.

하루 5번의 예배는 물론 코란에서 금기시하는 것을 최대한 지키려 할 것이다. 슐레이마니에 사원을 빠져나온 우리는 그곳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이스탄불 대학이 눈에 들어왔다. 터키에서 이름난 대학이다.

어느 곳이든 대학 근처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 곳 역시 그렇다. 겨드랑이에는 책을 끼고, 젊은이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희망과 꿈을 이마에는 달고 있는 학생들이 분주하게 오간다.

대학 앞 노천에 있는 서점을 보며 조금 걷자 그랜드 바자르(시장)란 글자가 보인다. 이스탄불 대학은 그랜드 바자르와 붙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랜드 바자르지만 그곳을 둘러보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었다. 공공시설 즉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수 있는 것들을 낮엔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루 모스크에 가기 위해선 벌집처럼 구멍이 뚫려 있는 시장 안을 거쳐야 했다.

곳곳에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아저씨.”

등등의 호객 소리가 들린다. 아직 동남아 유명 관광지에서 듣던 `천원!`이란 소리는 없다. 그랜드 바자르를 벗어나 얼마쯤 걷자 길 건너 공원지대 밑으로 청색 지붕 돔이 햇살에 푸르다.

이파리 떨군 겨울나무 사이로 청색 돔과 6개의 첨탑이 보인다.

6개의 첨탑. 저 6개의 첨탑이 불루 모스크를 상징하고 있음을 우리는 이미 책에서 익힌 상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