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이 된 여자

아직 비린내가 싱싱한

방금 소낙비 지난 자리 같은

물의 자궁 밖으로 기어나오는 달팽이의 등 뒤에 눈 감은 강이 있고

해 저문 산이 있다

왈칵 불 꺼진

해와 달의 박물관

우물 속에 빠뜨린 그림자에서 푸른 싹이 돋는다

굽이굽이 당신의 밤도 이쯤에서

맑게 일렁이는 유리창 하나 내었으면 좋겠다

햇볕도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 곳

달팽이가 천천히 겹겹의 그늘을 벗는다

뿌리부터 축축하게 젖은

기어코 당신이다

생의 유통기한이라고 말하면 웃기는 말이 되는 걸까. 폐경이 이르른 여자, 햇볕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 그 곳에 나이 먹은 인생들이 있다. 활발하게 유통되던 인생들의 축축한 뿌리가 스린 곳이다. 그러나 거기에도 달팽이가 기어다니고 푸른 싹이 돋는다. 평화롭고 원숙한 아름다움과 또다른 생명이 움트는 곳이다. 내리막길이 아니라 또 다른 오르막길이 놓여있고 아름다운 도전이 있는 곳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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