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물 한 잔으로 기침을 누그러뜨리며 독서모임 아이들을 기다린다. 책 좋아하던 실학자 이덕무는 `기침을 앓을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가 목구멍의 걸림돌을 시원하게 뚫어 괴로운 기침이 갑자기 사라져버린다`고 했는데 소리 내어 읽지 못할 정도로 목이 뻑뻑하니 그 말도 위로가 되지는 못한다.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기침은 내 아버기가 그랬던 것처럼 평생 따라다닐 성가신 친구가 되어 버렸다. 며칠 새 컨디션은 더 나빠져 입술마저 부르텄다. 그래도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를 읽기로 했으니 기운을 내야지. 머리며 어깨에 내려앉은 겨울비를 털어내며 아이들이 자리에 앉는다.

시에 대한 책 토론답게 워밍업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시나 책에 대해서 먼저 물어보기로 한다. 맏언니 같은 세온이는 론다 번의 시크릿을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단다. `좋은 생각은 모두 강력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약하다고 우주에 선언하라`는 말이 맘에 들어 메모장에 옮겨 놓았다나. 시작부터 오늘 토론의 중심부에 가 닿은 느낌이니 조짐이 좋다. 정민 선생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도 그런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가. `패랭이꽃`을 지은 정습명과 `시골집의 눈 오는 밤`을 노래한 최해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았단다. 패랭이처럼 작지만 당당하게 살아가리라는 긍정의 삶을 노래한 정습명은 임금의 총애를 받으며 평탄한 삶을,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의 우울한 자화상을 읊은 최해는 불우한 생을 살았다나. 긍정은 명랑을 낳고, 부정은 비애를 낳느니라. 작가의 의도대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적절한 선현의 예가 되려나?

귀여운 상연이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을 들먹인다. 두꺼운 책이지만 맘 내키는 대로 아무 쪽이나 펼쳐도 건질만한 게 나온다나. 중학생의 감수성을 따라잡지 못하는 나는 그런가 하고 일단 고개를 끄덕여준다. 나로서는 작가의 기발함, 창의력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으므로 실망도 큰 책 중에 하나였다.

식성도 까다롭고 말이 없는 기훈이는 의외로 `정의란 무엇인가`를 시도했단다. 정의가 무엇인지 결코 말해주지 않는 그 철학 입문서를 중학생이 읽기엔 조금 벅차지 않을까 싶어 되물었더니 그래서 일단 유보라나. 중도 포기가 아니라 다행이다.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산 것 만큼 독자들이 많이 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일단 제목처럼 명쾌한 답이 나오는 책은 아니므로.

마지막으로 수현이의 얘기가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다른 친구들이 긴 책을 이야기할 때 수현이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저는 초등학교 이학년 때 선생님께 들은 시 한 편이 너무 강렬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감명 깊은 시길래? 모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는데 대답이 걸작이다. 프랑스 작가라고 들었는데 제목은 뱀이고 내용은 `뱀은 길다`라는 아주 짧은 시라나? 순간 나는 당황했다. 오늘 소주제 중에 정민 선생이 말한 “시는 직접 말하지 않고 돌려서 말해야 하고, 다 말하면 안 되고 숨겨야 하며, 설명하는 대신 깨닫게 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수현이가 말한 `뱀은 길다` 라는 시구는 너무 직접적이지 않은가? 시를 아는 문인이라면 저렇게 직접적인 문장으로 한 줄 시를 썼을 리가 없지. 의문을 가진 채 검색을 해본다.

내 예상이 맞다. `홍당무`의 작가 쥘 르나르가 쓴`뱀`이란 시인데, 정확은 시문은`뱀은 길다`가 아니라 `너무 길다`였다. 그럼 그렇지. `뱀은 길다` 와 `너무 길다`는 하늘과 땅 차이다. 정민 선생 식이라면 `뱀은 길다`는 시가 안 되지만 `너무 길다`는 차고도 넘치는 시적 은유가 아니던가. 돌려서 말하고, 숨겨야 하며, 깨닫게 해야 하는 시인에게 `너무 길다`란 이 한 마디야말로 촌철살인의 시어가 아니겠는가? 시인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