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또 먼 길 떠날 채비 하는가 보다

들녘에 옷깃 여밀 바람 솔기 풀어놓고

연습이 필요했던 삶까지도 모두 놓아 버리고

내 수의(壽衣)엔 기필코 주머니를 달 것이다

빈손이 허전하면 거기 깊이 찔러 넣고

조금은 거드름 피우며 느릿느릿 가리라

일회용 아닌 여정이 가당키나 하든가

천지에 꽃 피고 지는 것도 순간의 탄식

내 사랑 아나키스트여 부디 홀로 가시라

일제에 항거한 아나키스트들의 삶이란 늘 극한 시련과 죽음이 전제되어 있었으리라. 그들의 여정은 늘 `일회용`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한히 자유스럽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쟁이 있었다. 비록 죽음이 다가선다 해도 수의에 주머니를 달고 거기에 손을 찌르고 거드름을 피우며 느릿느릿 가겠다는 자유의지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이러한 여유나 태연함은 조선의 선비정신이나 자유를 추구하는 자연인의 정신이 묻어나는 정신적 유산이 아닐 수없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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