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의포항CBS 본부장·소설가
며칠 전, 조선말기 삼재(三才) 가운데 하나로 꼽혔던 `이건창`의 글 `조선의 마지막 명문장`(글항아리)을 읽었다. 책을 읽다가 감명 받은 구절이 있으면 먼 곳에서 뜻하지 않은 친구가 찾아왔을 때처럼 마음이 따뜻하다. 밑줄을 긋고 몇 번이고 읽게 된다.

책 속에 눈길을 끈 부분은 `잔인하지 않으면 매가 아니다`라는 제목이었다. 고종의 어명을 받아 암행어사로 나갔던 이건창이 충청감사 조병갑의 비리를 파헤친 대가가 유배였다.

벽동으로 유배를 가 있던 이건창에게 동네 사냥꾼이 `매` 한 마리를 선물했다. 이건창은 그 매를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 쓸쓸한 심사를 달랠 겸 사냥을 했다.

숲 속에 꿩이 나타나자 매가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라 날쌔게 추격하더니 꿩 가까이 가서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낚아채지 못하고 주춤주춤 머뭇거렸다. 그 사이 꿩은 재빨리 도망치고 말았다.

잠시 후 토끼가 나타나자 매는 이건창의 손에서 날개를 펴고 날아올라 쫓아가서는 그만 꿩을 보았을 때처럼 머뭇거리는 바람에 토끼마저 달아나고 말았다. 이 매는 종일토록 단 한 마리도 사냥감을 낚아채지 못했다.

이를 본 이건창이 말하기를 “이 매를 어디에 쓰리요!” 하고는 날려 보냈다는 이야기였다. 이건창이 이 이야기를 통해 하고자한 말은 `매는 인자해서는 매가 아니다` 는 것이었다.

매의 역할은 사냥이다. 날카로운 발톱과 뾰족한 부리로 사냥을 하는 것이 매다. 조물주 하나님이 매에게는 그런 역할을 준 것이다.

`매`가 `매`의 역할을 못하면 `매`가 아니듯이 사람도 사람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다.

2012년은 선거의 해다.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동시에 치러진다. 조그만 시골마을의 이장도 잘못 뽑아놓으면 임기 내내 마을이 조용할 날이 없다. 경주시 어느 면에서는 최근 주민들이 선출한 이장을 젖혀두고 면장이 자기 입맛에 맞는 이장을 임명했다 해서 주민들이 면장실을 찾아가 항의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하물며 지역을 대변할 국회의원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를 이끌어갈 대통령을 뽑는 일은 국가의 명운이 걸린 대사다.

4월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나서는 인물들이 줄을 잇고 있다. 출마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두고 왈가왈부 말할 이유는 없다. 누구나 자신의 신념과 철학에 따라 출마를 결심하는 것이니까 그걸 두고 시비를 걸 일도 아니다.

다만, 국회의원에 출마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의 인품과 경륜과 지역사회 공헌도와 심부름꾼으로서의 겸손함과 성실함을 갖추었느냐와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다.

국회의원에 출마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인격이 있고 확고한 정치철학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오히려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거나, 혹은 이름 알리기 수단 정도로 이용한다거나, 출마선언으로 얻게 될 반사이익을 구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줄줄이 나서고 있는 출마후보군들에 대한 판단은 시민들 스스로가 하는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의 인품과 경륜과 지역사회 공헌도와 미래지향적인 가치관과 정치성향까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확고한 정치이념도 없고, 철학적 사고도 부족하고, 인품도 없고, 경륜도 미천한 사람이 오로지 명예욕과 헛바람이 들어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서는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해야 한다.

매도 아닌 것이 매처럼 흉내만 낸다면 이건창의 경우처럼 “이 매를 어디 쓰리요!” 하고는 날려 보내는 것이 지역사회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다.

2012년 임진년에는 저마다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고,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 한 해이기를 기도한다. 정치인이든, 종교인이든, 지도자거나 평범한 시민이거나 간에 모두가 어리석은 `매`처럼 자기 역할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날뛰는 일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