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致命)에 들려서라도 돌파하고 싶었던

연애가 있었다 하자, 그 찌꺼기까지

기꺼이 받아 마실 어떤 비굴함도

배 바닥으로 끌고 가면서

할 수 있다면 나, 독배(毒杯) 끝까지 놓고 싶지 않았다

아편에 저린 듯 자욱한 몽롱을 헤쳐 나왔지만

난파한 뒤에도 오랫동안 거기 계류되어 있었다는 것

이명처럼 흔들어서 나를 깨운 것은

누구의 부름도 아니었다

한 구덩이에 엉켜들었던 뱀들

봄이 오자 서로를 풀고 서둘러 구덩일 벗어났지만

그 혈거 깊디깊게 세월을 포박했으니

이 독창 내가 내 몸을 후벼 파서 만든 암거(暗渠)!

서로에게 흘려보낸 저의 독으로

마침내 지우지 못할 흉터를 새겼으니

허물 벗은 뱀은 제 허물이더라도

벗은 허물 다시 껴입을 수 없는 것을!

`독창`은 치명적인 사랑의 흔적이다. 사랑은 언제나 흔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비록 흔적으로 존재하더라도 그것은 영원할 수 있는 것이리라. 사랑이란 어쩌면 영원히 지속이 불가능한 비영속성 같은 성질을 가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편에 걸린 듯, 사랑을 접은 뒤에도 거기에 계류되어있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질기디 질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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