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흠 시사칼럼니스트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우리 사회에 기여한 공로는 영일만 뻘밭에서 맨손으로 철강산업을 일으켜 우리의 산업화를 뒷받침한 업적 뿐만아니다. 어쩌면 그 보다 더 큰 공로는 이전까지 농업에만 의존하던 사회의 구조를 공업화 산업화 자본주의화하는 획기적 변화의 동인을 만들었고 그 스스로 변화의 중심에서 수범을 보인 삶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는 어촌에서 자라나 포스코 회장이라는 거대자본의 경영자가 됐고 마침내 총리직에 오르는 신분의 수직상승을 이룩했다. 산업사회를 선도하면서 계층적으로는 하위계층에서 최상위 계층까지 올랐으나 세상을 떠날 때는 집도 한 칸 없이 태어날 때와 같이 빈손으로 돌아간 것이다. 자신의 실력과 업적으로 큰 돈과 큰 권력을 쥐었지만 그것을 세습하지 않고 사회에 돌려줌으로써 많은 국민이 그의 삶에서 신분상승의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식민지배와 전란으로 폐허가 된 나라가 어떻게 지금처럼 세계에 유례가 없는 발전을 이룩했는지를 놓고 많은 토론이 있었다. 그 때마다 나온 주장의 하나가 6·25전쟁으로 계층간 이동이 자유로웠고 이 때문에 국민들의 성취욕구가 극대화된 것이 사회변화의 가장 큰 에너지가 됐다는 것이다. 물론 박정희의 리더십이 그같은 욕구와 에너지를 근대화와 산업화의 방향으로 초점을 모았고 고 박태준 회장도 그에 선봉적 역할을 위대하게 해 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박회장 외에도 이병철, 정주영 등 개발년대의 영웅들은 모두 성취의 시대에 표상이었던 것이다. 계층상승 신분상승을 위한 국민적 욕구는 자신의 성공뿐아니라 나라를 선진화시키는 힘이 됐던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같은 시기에 출발한 북한은 한 때 일제의 산업 유산 때문에 다소 경제적 성과를 올린 적이 있었으나 김일성의 공산독재와 김정일에 이은 김정은까지의 3대 권력세습으로 국민의 성취욕구가 사라지고 나라경제는 침몰하게 된 것이다. 이제 김정일의 사망으로 권력세습이 순조롭게 이뤄질지는 알 수 없으나 설사 세습에 성공하더라도 공산당 지배권력의 귀족계급만 존재하는 한 국민들의 성취욕구는 살아날 수 없는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봉건적 권력세습의 나라가 몰락한 전철을 밟을 수 밖에 없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가난뱅이도 자기 능력에 따라 부자가 될 수 있고 서민의 자식도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해 왔는데 올해 통계청 조사로는 그게 그렇잖다는 것이다. “나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답한 국민은 10명 중 3명꼴이고 자녀세대의 계층상승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국민이 42.9%에 달해 가능성이 크다고 답한 41.7%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됐다는 선진국 국민의 자부심이 무너진 것이다. 노력해도 계층상승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우리사회가 이미 계급사회가 돼간다는 국민의식을 보여주는 셈이다.

인류사의 경험으로 보면 계층사회는 자신의 노력으로 하층에서 상층으로 사회적 지위의 이동이 가능한 사회이고, 계급사회는 부모의 재산과 지위가 세습되는 사회인 것이다. 계층사회는 자신의 성취가 중요하지만 계급사회는 처음부터 어느 계급에서 출생했는지 귀속을 중시하는 사회다. 계급사회로 이행되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파멸될 수밖에 없다. 세습과 귀속에 의해 신분과 지위를 누리게 되면 불로소득과 착취는 필연적으로 만연할 수밖에 없다. 인류의 역사는 이같은 계급사회를 계층사회로 바꾸기 위한 투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아직 우리사회가 계급으로 굳어진 사회는 아닐지라도 벌써 많은 국민들이 계층이동의 절벽을 느끼고 절망한다는 여론은 이미 계급화의 위기를 경고하기에 충분하다. 우리가 이룩한 피땀어린 민주화와 산업화가 물거품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사회의 계층이동에 낀 동맥경화를 치료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부문의 기득권 세력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고 맨몸으로 돌아간 고 박태준 회장의 정신으로 회귀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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