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연다. 이름마저 잊어버린

야생 난 한 포기 청초하다

지난해 늦여름, 깊은 산에서 유배된 뒤

세 계절을 이겨내고 여름 문턱에서

홀로 시를 읊고 있는지, 그런 불을

지피고 있는 건지, 유월 이 아침

진보라 꽃들을 온몸에 달고 있다

촘촘한 꽃잎들이 나를 올려다보지만

잎사귀의 초록빛은 꼿꼿하고 차갑다

산속이 아니라 지조를 지키려는지

몸에 밴 절제 때문인지, 수절하며

끝내 숨으려 하는 여인처럼

새치름, 내 마음 흔들어 당기고 있다

진보랏빛 야생란의 꽃잎 앞에서 시인은 자연과 자신이 합일됨을 느끼고 있다. 자연의 작은 반응에서 조차 거기에 투영되는 인간을 발견하고자 애쓰고 있음을 본다. 깨끗한 생명의 자연스런 발현에 대비해 우리 인간의 속물스러움을 비춰보고 자기를 정화해 가고자 하는 시인정신을 발견할 수 있어 좋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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