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을 맞아 모처럼 고향을 찾았다

마을 어귀

늙어진 팽나무만 덩그러니 맞아 줄 뿐

이웃들 얼굴 하나 보이지 않는다

텅 비어 있는 집

바람에 짓눌려 부대끼는 대나무 숲

오늘따라 새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

일몰이 하산하는 뒤란

할머니 가꾸시던 더덕과 도라지 향이

예전 그대로 코를 찌른다

작약꽃 창백한 얼굴로 하직하는 뜨락

찍찍대던 쥐떼들 움직임 사라지고

야생이 된 고양이 텃밭의 비닐 뜯으며

무료함을 달랜다

그리운 누이와 형제들

떠나가신 아버지, 어머니 불러보아도

내 목소리 바람에 쓸려간다

이제 고향은 소리조차 끊어져

바람만이 찾는 빈 시간의 창고로 박제되었다

교직에서 퇴임한 시인이 기계면 봉계리에 있는 고향집을 찾았지만 낡고 기울어진 옛집과 늙은 팽나무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풍경 앞에서 세월의 무상함과 가슴에 스미는 쓸쓸함만 느끼고 있다. 박제된 빈 시간의 창고 같은 고향이지만 거기는 목숨을 얻은 첫 둥지요 부모형제의 사랑과 정성과 헌신이 녹아있는 정겨운 공간이기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곳이 아닐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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