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편집국장
팔만대장경, 중의 바라경, 봉사의 앤경, 약국의 길경, 처녀의 월경, 머슴의 세경. 초랭이가 경을 셀 때마다 고수가 장단을 넣어준다. 관중은 박수를 치며 흥을 더한다. 하회탈놀이에서 선비가 양반과 서로 지체 높음과 학식 깊음을 자랑하는 대목에서다. 선비가 사서삼경을 읽었다니 양반은 갑절이나 되는 팔서육경을 읽었노라 억지를 부린다. 무슨 소리냐니까 초랭이가 나서서 `나도 아는 육경`이라며 읊어 대는 것이다.

탈놀이의 재미는 풍자에 있다. 짓눌리고 피폐한 민중들은 잘난 양반을 웃음거리로 만들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삶에 찌들린 민초들은 양반들을 꼬집고 조롱하면서 희열을 느낀다. 반상의 구분이 엄정했던 시대에 상것들에게 양반은 질시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 양반을 평시에 정색해서 욕보일 수는 없으니 놀이 때 탈을 쓰고 풍자하는 것이다.

그 탈을 쓰고 노는 직업이 광대다. 이미 고려시대에 탈을 쓰고 노래하는 광대가 등장했다고 고려사는 적고 있다.

그러던 광대가 지금은 개그맨으로 변신했다. 그들이 노는 물이 TV라는 공간이다. TV는 출발 당시부터 바보상자로 불리던 곳이다. 일부 프로그램을 교양이나 뉴스로 위장을 하지만 그 뉴스도 `쇼`로 만들고 연성화해서 시청자들을 꼬득이려 달려드니 천생 바보상자이다. 그 바보상자에서 광대들이 노는 것이 코미디다.

강용석 국회의원이 개그맨을 고소했다가 또 한번 이름값을 치렀다. 다행히 취소했지만 국회의원을 욕보였다는 죄였다. KBS2TV의 개그콘서트에서 코미디언 최효종이 국회의원 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아무라도 자존심 조금 상하고 상식 이하로 비굴해지면 될 수 있다는 듯이 아닌 사실을 날조하고 확대 과장했다는 것이다. 마침 성 희롱 발언으로 여성들로부터 집단 소송을 당했던 그로서는 “내가 죄가 된다면 국회의원 전체를 능욕한 개그맨도 죄가 될 것”이라 고소한 듯하다. 그러나 고소당한 개그맨의 인기는 오히려 올라갔고 그가 출연한 프로그램 시청률도 높아만 갔다.

풍자는 약자가 강자를 대상으로 할 때 그 약효가 배가된다. 개콘의 재미도 탈놀이처럼 풍자에 재미가 있다. 잘 난 양반을 망가뜨리고 웃음거리로 만들면서 그들에게 짓눌렸던 민초들은 일시적이나마 탈놀이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직장인들이 술자리에서 상사 욕을 하면서 업무상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이치라고나 할까. 마찬가지로 잘난 국회의원이기에 개콘의 소재로 등장한 것이다.

국회의원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분류하든 최상위 그룹에 포함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론 조사를 보면 신뢰도가 하위권이고,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일에는 늘 상위권을 차지하지만 실제는 거꾸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탐하고 그곳에 올라가려고 용을 쓰는지는 지금 정치권을 보면 안다. 그들이 얼마나 자리를 지키려고 발버둥치고, 또 한 편에서는 그곳에 올라서려고 노력하는지를 보라. 비록 공개석상에서는, 특히 선거 때면 국민들에게 허리를 굽히고 표를 구걸하지만 그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고도 부족하지 않다. 개그맨들이 그들을 소재로 삼는 것은 그들이 만만해서가 아니다. 부러워서다. 강자이기에 개그의 소재가 되는 것이니 전혀 분개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즐기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부부싸움을 하던 중 아내가 남편에게 제대로 해 줄 욕이 없어서 했다는 말이 “오냐, 너 잘났다”라고 했다던가. 그 남편은 경제적으로도 능력이 있고 남자 구실도 제대로 해서 부인으로서는 `너가 해준 게 뭐 있냐?`고 퍼부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 욕을 먹을 수 있는 게 얼마나 행복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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