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조락(凋落)의 계절 가을을 맞아 내적충실을 갈망하는 기도형식의 시로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고독의 시인인 김현승의 대표적인 시로 좀더 깊은 생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명상적, 기구적인 분위기와 어조가 시대를 초월해서 참 편안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물질지향적이고 찰라적이고 욕망적인 삶에 갇혀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에 신선하고 진중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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