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환 `ASIA`발행인·작가
서울시장에 뽑힌 박원순. 내가 그의 진정한 친구라면, 과연 축하선물로 무엇을 보내야 할까? 오래 고심한 끝에 `거울`을 택하겠다. 미당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에 등장하는 그 거울, 머나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이제는 거울 앞에 선 누님이 자기 삶을 성찰하려는 그 거울.

오늘 아침에도 박 서울시장은 거울 앞에서 얼굴을 살폈겠지만 내 주위 사람들은 언론에 비친 그의 얼굴이 말끔해 보이고 승리의 기쁨과 벅찬 감격 탓인지 피로의 낌새도 없는 얼굴이라 말했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의 얼굴이 멍투성이로 보였다. 눈두덩이 시퍼런 것 같고 광대뼈에도 땡감이 달라붙은 것 같았다. 내 눈에 보이는, 그의 얼굴에 남은 그 시퍼런 멍들은 검증의 펀치를 얻어맞은 상처들이다.

박 서울시장은 보름 남짓 진행된 선거운동 기간에 검증의 펀치들을 오지게 얻어맞았다. 그로기에 몰린 권투선수처럼 비틀거린 나머지 안철수 교수에게 `계획된 SOS`를 보내야 했다. 그가 성내는 표정으로 `네거티브`라는 방패를 들이댔지만 검증의 펀치들은 사정없이 그의 얼굴을 강타했다. 협찬 인생, 강남 좌파, 위장 양자 의혹, 딸의 편입 특혜 의혹, 아내의 사업 특혜 의혹…. 본디 나는 `시민운동가 박원순`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좀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은 적 있었지만 저만한 사람도 아주 귀한 시대라 생각했다. 그의 삶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고단한 실천일 것이라 짐작했다. 물론 언젠가는 정치판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도 해보았다. 시민운동이라는 자못 전투적이며 팍팍한 선입견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한 `자기세뇌와 자기연마`의 결실로만 느껴진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통해 저 사내는 `원모(遠謀)의 인간형`일 것이라 판단하고, 때가 무르익어 정치에 나선다면 나서는 것이지 그게 뭐 어떠하단 말인가라는 이해도 해뒀다. 그러한 나에게 `사람 박원순`이 쓰라린 실망을 안겼다. 지난 선거운동에서 검증의 펀치가 설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의 학력 중 하나가 `서울대 법학과 제적`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대 사회계열 제명`으로 밝혀졌다. 저서에 `서울대 법학과 제적`이라 표기한 잘못에 대하여 그는 `출판사`를 방패로 사용했다. 그것은 나를 무척 화나게 했다. 포항시민인 내가 화내든 말든 그의 당락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었지만 내 눈에 `사람 박원순`이 달라 보였다. 도대체 어느 저술가가 자기 책에 나가는 자기 학력 소개를 인쇄 전에 살펴보지 않는단 말인가? 설령 출판사를 방패로 사용한 그의 해명이 사실일지라도 내 입에는 쓴맛이 고였다. 박 서울시장은 나보다 두 살 더 먹었다고 약력에 나오니 `우리 또래`인데, 우리 또래의 `참으로 평범한 사람들`에게 `경기고, 서울대 법학과`는 한국에서 수재 중 수재가 들어가는 곳이라 인식돼 있었다. 그것은 우리 또래의 통념이요 심지어 상식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참으로 평범한 우리 또래들에게는 일종의 신비감으로 비치기도 했다. 그러니까 참으로 평범한 우리 또래 사람들의 통념에서 `경기고, 서울대 법학과`와 `경기고, 서울대 사회계열`의 차이는 그 신비감의 유무라는 차이였다. 왜 출판사가 그에게 `서울대 법학과`로 표기하자고 했을까? 바로 그 신비감을 은근히 드러내서 상업적으로 활용하자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경기고를 나와 서울대 법학과로 진학했으나 일찍이 민주화운동에 나섰다가 억울하게 제적당하고 나중에 사법고시를 합격하여 변호사가 됐으나 돈벌이의 길을 버리고 시민운동가의 고독하고 고단한 외길로 나아가는 박원순. 이 인생 경로를 `참으로 평범한 독자들`이 우글우글 끓는 독서 시장에 제시할 때 `서울대 법학과`는 저자의 삶을 신비한 색채로 물들이는 중요한 물감이 아닐 수 없다. 그가 해명한 대로 그 오기(誤記)가 출판사의 뜻이었고 자신이 암묵이든 표명이든 동의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상업주의와 야합한 행위이다. 그 오기에 왜 내가 실망하고 분노했는가? 나는 작가의 상업주의적 야합을 혐오하고 경멸하기 때문이다.

신들린 것 같기도 하고 `손가락 한 문장`이나 `인증샷` 따위로 자기 존재감을 대중 속으로 드러내려는 괴물들의 광기 같기도 했던, 그 속에 세대적 불만과 반란을 담았다는 `젊은 표`가 박원순 후보를 당선시켰다. 그러나 선거에서 이긴 것이 깊은 내면의 어떤 진실을 바꿔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승자에게 그것을 들여다볼 거울을 선물하고 싶은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우리 시대의 염증을 명확히 확인시켜준 `안철수와 박원순`의 공로에 높은 평가를 보내는 작가로서, 나는 신선할 것이라 믿어온 인물들마저 검증의 펀치에 쩔쩔매게 된다면 머잖아 정치 허무주의가 팽배하게 된다는 경고를 보낸다. 먼저, 보이지 않는 멍투성이 얼굴의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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