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
10년 전 인도에 갔을 때를 생각하면 인도의 발전상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울 수 있고 비교가 되지 않는다. 길거리는 고물차와 사람, 돼지, 소가 뒤엉켜 악취가 나고 걸인들로 넘쳐났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델리는 고물차대신 한국의 현대차 등 고급스러운 새 차들로 홍수를 이뤘으며 길거리 낡은 건물이 헐린 자리에는 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지하철 공사와 도로를 넓히는 중장비 굉음으로 소란스러웠다.

인도를 처음 찾은 사람들에게 인도는 여전히 거리는 더럽고 헐벗은 나라로 비친다. 아직도 많은 걸인이 거리를 누비고 음식점은 불결하지만 인도는 분명 빠른 속도로 달라지고 있다.

1991년 이후 폭풍의 개혁이라고 묘사될 정도로 대대적 경제개혁을 시도한 인도는 지금 `21세기 슈퍼 파워`를 꿈꿀 정도로 고속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으며 국민 개인 소득은 1천달러에 불과한 후진국이지만 억만장자는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

델리·뭄바이 등 대도시에선 부동산 값이 한해 몇 배씩 뛰는 곳이 많아 몇몇 개발 예상지역과 대도시 인도의 부동산 열기는 우리의 지난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애용하는 상품개발이 가장 잘된 곳도 인도다.

6년 전 골드만삭스는 인도가 앞으로 5~6%의 고성장을 이어갈 경우 2030년엔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대 경제 강국이 될 것이라고 예견할 만큼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가고 있다.

인도는 현재(2007년 9%성장) 8~9%의 고속성장을 하고 있으나 가난한 인구가 너무 많다는 점이 가장 큰 장애요소다. 도로·전기· 항만 같은 사회기반시설이 열악하고 신 성장에 따른 빈부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가하면 높은 문맹률이나 부패, 관료주의에다 이슬람과의 종교적 갈등 등 인구가 많은 만큼 사회적 갈등요소도 많은 게 가장 큰 흠이다.

인도의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도시 뭄바이는 1995년 봄베이(Bombay)에서 바뀌었다.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자 유럽과의 거리가 가까워져 무역활동이 왕성해 졌다. 또 인도의 철도 교통이 한번은 거처 가는 곳이어서 자연스럽게 경제중심도시로 성장했는가하면 영국 통치시절 100년간에 걸쳐지어진 영국식건물이 잘 보존돼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흔히 인도를 두고 “7일을 여행하면 한 권의 책을 쓰고, 7개월을 지내고 나면 한 편의 글을 쓰고, 7년을 살고나면 아무 것도 말 할 수 없다”고 한다. 겪으면 겪을수록 어려운 나라라는 의미인 것 같다. “인도에는 왜 군사 쿠데타가 없을까” “인도에는 왜 수많은 종교, 신이 공존할까” “종교의 나라이지만 수학과 과학이 발달한 나라일까”

실제 인도인은 말이 많다. 지난여름 국제로타리가 주관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로타리 공공이미지 코디네이터 회의에서 인도 대표가 마이크를 독차지 했다. 유엔에서 9시간동안 가장 긴 연설을 한 인도인 크리슈나 메논의 토픽이 생각났을 정도였다.

인도는 북인도의 8대 불교 성지를 비롯해 볼 곳이 너무 많다. 지상의 낙원인 남인도 케랄라는 44개의 크고 작은 강이 아라비아 해로 흘러드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샛강과 도로가 거미줄처럼 얽혀 섬들이 점점이 떠 있다.

`코코넛의 땅`이란 지명이 가리키는 것처럼 어디에서나 야자수가 무성하게 자라고 내륙을 잇는 수로에선 갈대와 대나무로 만들어진 수상선박에서 하루 밤을 지내보는 것이나 은하수를 바라볼 수 있는 낭만과 경이로움은 남인도의 특별한 체험이다. 남인도 전통음식도 먹어볼 만했다.

상대적으로 북인도는 어려운 곳이다. 2500년 전 부처가 태어났을 때나 지금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불교 성지 순례자들이 가끔은 곤욕을 겪는 곳이기도 하지만 북인도역시 변화의 바람이 부는 것을 곳곳에서 감지된다.

지금도 인도는 힌두교의 수행자(사두)가 아니라도 생사문제에 대해서는 철학가 수준이다. 그래서 갠지스는 씻는 곳이다. 행복지수 상위권에 들어 있는 세계의 그 어떤 나라도 인도가 주는 평온함을 앞설 수는 없다. 적빈(寂貧)하고 지극히 고결한 삶에 대한 인식이 인도인의 삶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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