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도 끈질기게

흔들려도 당당하게

업보인 양 숙명인 양

뻗고 잡던 손과 손이

한여름

뜻 맞춰 얽히며

푸른 꿈을 키웠다

풀무질에 가마솥 달 듯

어기찬 갈바람에

온벽이 익어가던

어느 날

담쟁이는

그 붉은 선혈을 뿜어

붉은 벽을 덮었다

이 시에서 붉은 벽은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가 안고가는 운명이랄까 업보 라는 느낌이 든다. 우리 인간이 영위해가는 삶은 우여곡절의 연속이고 갈수록 난형난재의 삶이다 그런데 담쟁이를 가만히 들여다보자. 한여름 땡볕에도 그 붉은 벽을 어기차게 기어오르고 있다. 자신이 안고가는 기막힌 운명, 그 숙명을 거부하지 않고 처절하리만큼 붉은 선혈을 뿜어 오르고 또 오르고 있는 것이다.

<시인>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