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환 `ASIA`발행인·작가
`인생은 아름답다. 미래의 세대로 하여금 인생에서 악과 억압과 폭력을 일소하고 삶을 마음껏 향유하게 하라` 참 아름다운 말이다. 러시아 혁명을 주도한 트로츠키의 것이다. 레닌이 후계자로 점찍었지만 그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스탈린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졸지에 떠돌이 신세로 전락해 머나먼 멕시코까지 도망쳤다가 스탈린의 자객에게 무참히 쓰러진 `영구혁명론`의 트로츠키. 20세기 초 레닌과 함께 세계 재편의 뇌수 역할을 했던 그의 명민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은 영구혁명으로써 미래 세대에게 저 말이 실현된 체제를 물려줄 수 있다고 꿈꿨다. 그가 지목한 `악과 억압과 폭력`이란 제정러시아 짜르체제, 스탈린의 무자비한 폭력정치, 시장 질서의 비인간적 횡포였을 것이다.

`월가를 점령하라!` 미국 전역을 넘어 세계로 번지는 그 들불이 드디어 한국에도 상륙한 날, 나는 트로츠키의 저 말을 떠올렸다. `우리는 99%`라는 피켓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사람들이 `우리 인생의 악이자 우리 인생에 대한 억압이며 폭력`이라고 먼저 지목한 것은 금융업자들의 너무 뻔뻔스런 탐욕과 1% 부자들이 국민 전체 자산의 40%를 소유해버린 너무 지나친 불평등이다. 그렇다면 금융업자들이 쓰레기 상품을 남발해 돈을 빨아들이다가 그게 함정이 돼 망해먹을 판국으로 내몰리고, 그것이 국가경제와 세계경제에 엄청난 위기국면을 조성하고, 그들을 살려내느라 어마어마한 세금을 쏟아 붓고, 그러한 상황에서 `돈 놓고 돈 먹는` 부자들은 더 많은 돈을 벌지만 국가재정은 악화되고 복지혜택은 축소되고 경기가 나빠져서 일자리는 왕창 줄어드는 이 악순환의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이미 답은 제출돼 있다. 신자유주의는 한계에 왔다는 것이다. 금융자본주의라고 불러야 하는 현 자본주의체제로는 더 많은 다수가 결코 행복과 안녕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시장 질서`에 맡기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류가 발명한 부(富) 창출의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시장이지만, 시장 질서로는 윤리와 정의와 공평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시장 질서는 인류가 가장 소중한 정신적 가치로 받드는 그것들을 쉽게 부순다는 것이다. 인간은 돈이 있어야 인간답게 살 수 있고, 그래서 인간은 맹수가 운명적으로 사냥을 해야하는 것처럼 운명적으로 돈벌이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존재지만, 돈에 의한 악이고 억압이며 폭력이라 해야할 `윤리와 정의와 공평의 파괴`에 대하여 더 이상은 참고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로 번지는 `occupy 들불`이 계급혁명의 사회운동은 아니라는 분석이 대세를 이룬다. 여전히 계급혁명의 미몽에 빠져있는 극좌세력이 현 정세를 적극 활용하기 위해 온갖 묘안을 짜내긴 하겠지만, 그것이 계급혁명의 성격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1848년 2월, 런던 어느 방구석에서 서른 살의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라고 시작되는 유명한 `공산당 선언`을 썼다. 바이블 다음으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다는 공산당 선언에서 그는 “노동자 계급이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임금노예라는 쇠사슬뿐이며 얻을 것은 새로운 세계 전제”라고 예단했다.

마르크스의 그 예단은 1990년 무렵에 발발한 지각변동과 같았던 사회주의국가들의 연쇄 붕괴를 통해, 북한의 처참한 오늘의 실상을 통해, 공산주의를 한낱 통치수단으로 여기는 중국의 번영을 통해 `틀려먹었다`는 판명이 났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예단이 틀렸다고 해서 현존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가 옳다는 것인가? 마르크스의 오류가 현존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북한체제가 틀려먹었다는 사실이 남한체제의 심각한 문제들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occupy 들불`은 윤리와 정의와 공평에 대한 개개인의 갈증이 집단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현존 자본주의체제를 개선하여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를 하자는 외침이다. 아직 그것이 몸부림 수준으로 격화되지는 않았다. 그것이 몸부림 수준으로 격화되면 계급혁명의 유혹을 받게 된다. 이쯤에서 각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 현존 자본주의체제에 `인간의 얼굴`을 초대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한미FTA 비준이 `occupy 들불`에 대한 근본적 해법은 아니다. 한국사회의 시스템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우리의 시장 질서에는 어떤 악과 억압과 폭력이 상존하며 그것들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깊이 통찰해야할 주제였는데, 청와대 참모들은 `꼼수`라고 얻어맞은 내곡동 사저문제 따위도 챙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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