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지선(秋之扇)

`가을부채` 가을이 돼 쓸모없게 된 부채를 가리킨다. 곧 여름에 시원한 바람을 일으켜 줘 주인에게 사랑받았지만, 가을이 되자 쓸모없게 돼 한구석으로 밀려나고 만 처지를 말한다. 이에 비유해, 사랑을 잃게 된 처지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반첩여의 `원가행(怨歌行)` 이라는 시에서 비롯됐다. 반첩여의 전기는 `한서(漢書)` 속에 그의 유명한 `자상부(自傷賦)`와 함께 실려 있으며 `원가행(怨歌行)`은 `문선(文選)`과 `옥대신영집(玉臺新詠集)` 등에도 실려 있다.

“새로이 제(濟)나라의 흰 비단을 재단하니,

희고 깨끗하기가 상설(霜雪)과 같다.

마름질하여 합환(合歡)의 부채를 만드니

둥글둥글하여 명월(明月)같다.

임의 품과 소매 드나들면서

움직일 때마다 미풍을 일으킨다.

어느덧 두려운 가을이 오면

서늘한 바람이 더위를 빼앗아가니

장롱 깊숙이 버려지는 신세가 되어

은정(恩情)은 도중에 끊어지는도다”

이것이 `원가행(怨歌行)`이라는 시 가운데 나오는 `가을 부채`이다. 이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한(漢)나라 성제(成帝) 때 이야기이다.

성제의 후실인 반첩여가 황후 허씨(許氏)와 짜고. 임금의 사랑을 받고 있는 후궁들을 저주하고, 또 임금에 대한 중상과 욕을 했다는 혐의로 하옥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나 사실은 임금의 총애를 독점하고 있던 조비연(趙飛蓮) 자매가 일을 꾸며 허황후와 반첩여를 무고하게 옭아넣었다는 소문이었다.

소문대로 죄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반첩여는 자신의 신세를 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 후궁살이를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미 임금의 총애도 옛날 같지 않고. 질투의 소용돌이에 언제 또 휩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반첩여는 장신궁(長信宮)으로 들어가 황태후를 모시며 지내겠다고 원해 성제의 허락을 받았다. 황태후는 성제의 모후(母后)로서, 반첩여가 후궁으로 들던 무렵 그를 귀여워해 주었다. 장신궁으로 들어가 황태후의 말 상대로 호젓하고 쓸쓸한 나날을 보내던 반첩여는 성제가 죽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이 40여세로 조용히 죽었다.

장신궁에 있으면서 반첩여가 자신의 심정을 노래한 시가 바로 `원가행`이다. 이 시는 옛날 임금의 총애를 받던 시절을 그리면서, 지금의 처지를 가을이 돼 쓸모없게 된 여인을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

한때 쓸모 있어 사랑받다가 쓸모 없게 된 후에 버려지는 일은 예나 지금에나 흔하디 흔한 일이다. 인간이 매정한 것은 필요한 때에는 요긴하게 썼다가도 필요 없어지면 가차없이 고개를 돌리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데 있다. 그렇다고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닌데, 옛정을 생각해 달라며 눌러붙어 있는 것도 딱하고 염치없는 일이다.

사람의 일은 마무리가 중요하다. 혹 다음에 쓰일 것을 생각해서 잘 갈무리해 두든지, 아니면 그것이 쓰일 새로운 쓰임새를 찾아 놓아주든지 하는 것이 사람을 관리하는 지혜가 될 것이다.

/쌍산 김동욱

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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