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로서는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다. 러시아 육상의 코드인 여자 장대높이뛰기에서 패했지만 다른 종목의 선전으로 위로받을 수 있었다.

 이틀 동안 투척과 도약, 트랙을 모두 치러 내는 여자 7종 경기는 마지막 종목인 800m가 시작됐지만 이미 러시아의 체르노바의 승리가 결정적이었다. 특정종목에 신체능력을 극대화 한 스포츠와는 달리 남자 10종 경기와 여자 7종 경기는 신체의 고른 발달과 극한의 고통을 겪어내야 한다. 전혀 다른 근육작용을 요구하는 7종 경기는 그래서 철녀라는 호칭을 부여함에 부족함이 없어 스포츠 중의 스포츠라 할 만하다.

 이 경기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영국의 제시카 에니스가 있기 때문이다. 에니스는 보통 사람과 비슷한 키 165cm, 체중 56kg의 친근한(?) 체격이지만 세계 최고의 강인한 ‘철’의 여자이다.

 ‘부상을 원하는 선수는 없지만, 선수는 부상을 통해서 강해진다’는 그녀의 말처럼 그녀 역시 부상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왔다. 작은 신체로 인해 투척 종목에 약한 에니스는 러시아의 체르노바에게 창던지기에서 역전을 허용한 후 마지막 경기의 출발점에 섰다. 역전이 불가능함을 알지만 처음부터 선두로 나서 남은 힘을 다 쏟아 부으며 2위로 골인, 은메달을 확정했다. 경기를 마친 후 선수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이틀간의 한계를 넘는 고통을 서로 위로했다. 이어 모든 선수들이 우정으로 손을 맞잡고 트랙을 돌며 갈채를 보내준 관중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승자의 교만이나 패자의 회한이 없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아마 가장 많은 갈채를 받았을 이 장면으로 그녀들은 스포츠는 전투가 아니라 화해임을 보여주었다.

 여자 장대높이뛰기도 ‘데일리 프로그램의 저주’가 들어맞은 셈이다. 여제 이신바예바의 재기에 관심이 쏠린 관중석에서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과연 이신바에바는 4.65m에 여유있게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미녀새는 그 이상의 높이에서는 날개를 펴지 못하고 추락하고 말았다.

 독일의 마르티나 슈투르츠는 도전적 아름다움과 강인함이 돋보인 선수였다. 160cm라지만, 더 작아 보이는 키와 53kg의 체격에 짧은 금발머리, 단단한 근육질의 이 꼬마병정은 활기 넘치는 포즈와 즐거운 표정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4.75m에서 2차 시기에 성공하더니 단숨에 4.8m에 1차로 성공하며 메달 가능성을 높였다.

 이들에 비해 침착하고 여성적인 브라질의 무레르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장대를 분실한 비운의 주인공이었다. 그녀는 4.8m에 2차로 성공해 슈투르츠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이어 4.85m에 1차로 성공해 선두로 나섰다. 그러자 용감한 슈투르츠는 4.85에 1차 시기를 실패하자 승부수를 띄워 4.9m로 올렸다. 독일 최고기록을 세운 슈투르츠의 도전은 거기까지였다. 결과는 무레로의 승리였다. 이신바예바는 4.8m에서 모두 실패함으로써 6위로 쓸쓸히 관중들의 아쉬움을 받으며 퇴장했다.

 여자 장대높이뛰기에서 피오파노바의 동메달로 만족했지만 러시아는 3천m 장애물 경기가 남아 있었다. 여자 3천m 장애물 경기의 우승후보는 케냐의 케이와였으며 케냐는 나머지 두 명의 선수로 구성돼어 있었다. 자리포바는 출발부터 선두를 내주지 않고 케냐의 추격을 따돌리는 공격적인 작전을 펼쳤다. 6분 경, 케냐의 선수들이 바싹 달라붙었지만, 자리포바는 그들의 늪에 빠지지 않고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트랙경기 중 가장 완벽한 레이스였다.

 남자 원반던지기는 독일의 로베르트 하르팅이 68m97를 던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우승 세리머니로 트랙을 돌며 관중의 응원에 감사했다. 장대높이뛰기 경기장을 지나다 트랙 경계선에 마중을 나온 은메달의 꼬마병정 슈투르츠와 포옹을 나눴다. 야수와 꼬마병정의 축하 포옹은 체격의 차이가 컸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포옹은 흔치 않은 장면이었다.

 함께 고통을 헤쳐 나온 여자 7종 경기 선수들의 진한 우정, 야수와 꼬마병정의 동료애, 남자 400m 케빈 보들리와 조나단 보들리 쌍둥이의 형제애는 이날 육상이 함께 감동을 나누는 스포츠임을 보여준 흐뭇한 장면이었다.

 



/이경우기자 ithelee@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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