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흰나비로 상징되는 순진하고 낭만주의적인 정서에 젖은 나약한 존재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냉혹하고 비정한 현실에 나갔다가 상처받고 좌절해버리는 현실인식이 강한 작품이다. 시인은 무한 한 바다와 한갓 미물에 불과한 흰 나비의 대조를 통해 역사 혹은 운명같은 거대한 힘 앞에서 좌절할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식민지 시대의 시이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작품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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