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환 `ASIA`발행인·작가
“한나라당이 재집권을 위해서는 날로 심화돼 가고 있는 사회 양극화를 완화해야 한다.”

지난 19일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내놓은 발언이다. 그가 말한 `사회 양극화`란 무엇일까? 경제적 문제로 범위를 한정하면, 당연히 저 외환위기(IMF사태) 때 결정적으로 굳어진 `20 대 80`의 사회구조를 다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부터 14년 전인 1997년 겨울부터 한국에서 살아온 대다수 한국인은 `아이엠에프사태`라는 말에 진저리를 친다. 그 국가부도위기 사태가 한국사회를 돌이키기 어려운 `양극화` 체제로 굳어지게 했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상식이다.

그해 겨울에 한국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식민지 체제로 합병됐다. 그해 여름, 4년여 만에 조국으로 돌아와 포항 북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즉시 맥아더 장군이 함상에 서서 일본 접수를 선언했던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코쟁이 백인이 김포공항에 내려서 한국경제 접수를 선언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듯이, 아이엠에프사태는 창졸간에 독수리가 쥐를 덮치듯이 한국인의 일상을 덮쳐왔다.

아이엠에프사태가 한국인의 의식에 얼마나 무시무시한 상처를 남겼는가? 그때는 초등학생이었고 현재는 `졸업을 자꾸 미루는 대학생들`로서 등록금문제와 취업문제에 등이 휘어진 이 나라의 가난한 청년들은 대체로 자기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증언한다. “아이엠에프사태의 충격으로 사업을 망쳤다가 간신히 다시 일어선 아버지는 `뭔가 용기 있게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없는 남자가 되어 `작은 것이라도 잘 지켜내야 좋은 가장(家長)`이라고 확신하는 남자로 변모했다.”

정축년(1997) 12월3일. 세종로 정부청사의 한 테이블 앞에 세 사내가 나란히 앉았다. 한국은행 총재, 한국 경제부총리, 그리고 IMF총재 미셸 캉드쉬. 심각한 두 한국인은 만년필로 서류에 서명하고, 코쟁이 백인은 한가로이 두 손을 포개서 책상 위에 얹은 채 옆의 한국 부총리가 서류에 서명하는 모습을 커닝하듯 지켜보고 있었다. 이 장면이 한국 신문들의 톱뉴스를 장식했다. 그것은 경제적 주권을 IMF에게 넘겨주는 `정축국치`의 생생한 현장이었으며, 모든 언론이 `6 ·25전쟁 후 최대 국란`이라 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은 한국사회가 노숙자를 대량 생산하는 잔인하고 처절한 계절이었다.

정축국치의 서류에 따라 한국정부는 `기업인수합병(M&A) 시장의 전면 개방` 등등을 수용해야 했고 `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제` 등 이른바 `노동시장의 유연성` 재고를 위한 대책들을 곧바로 시행해야 했다. 그렇게 `양극화로 갈 수밖에 없는 길`이 사회안정망 같은 대책을 세울 여유도 없이, 아니 무방비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졸지에 활짝 열려버린 것이었다. 참으로 엄청난 사회적 폭력이었다.

한국사회의 두터운 중산층을 산사태처럼 무너뜨리고 숱한 서민을 생계의 극한지대로 몰아간 아이엠에프사태를 이 땅에 불러들인 총체적 책임자는 누구였는가? 바로 당시의 김영삼 대통령이었다. 한국 언론은 그 대통령을 여전히 YS라 부르며 예우하고 있고, YS는 필생의 경쟁자였던 DJ가 이 세상을 떠났음에도 여전히 현실 정치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처럼 `다음 대통령은 누구를 찍을지 결정해뒀다`는 따위 정치적 발언을 던져서 언론의 시선을 끌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저 분은 한국사회가 정말 심각한 고질병으로 앓고 있는 20 대 80의 양극화 구조에 대하여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모양이구나`라는 쓸쓸한 생각에 잠기게 된다.

홍준표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에 뽑혀 우선순위로 찾아간 이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넙죽 큰절을 올린 그는 부모님 아닌 분에게 처음 큰절을 올리는 것이라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그러한 언행이 검사의 옷을 벗은 자신을 여의도 정치계로 불러준 은인에 대하여 예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양극화`를 현재 한국사회의 가장 심각한 폐단이라고 판단하는 정치 지도자라면, 그것이 내년 대선에서 정권교체의 주요 동력으로 변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정치 지도자라면, 우리 시대의 상식을 망각해선 안 된다. 아이엠에프사태로 인해 양극화가 결정적으로 굳어졌고, 그것이 그해 겨울의 대선에서 정권교체(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에서 민주당으로 교체)를 초래한 주요 동력이었으며, 그 총체적 책임이 당시의 김영삼 대통령에게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망각해선 안 된다. 그가 진정으로 시대적 고통을 통감했다면 어떤 개인적 이유에서든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YS의 발 앞에 엎드리지 말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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