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흠 시사칼럼니스트
한진중공업 사태의 전개를 보노라면 우리나라가 혼란 속에서 혁명 전야에 놓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한진중공업 노사분규는 핵심당사자가 아닌 민노총의 상급 지도위원이 크레인 꼭대기에 6개월째 극단적 시위를 벌이는 상황에서 시민단체 등 제3자의 지원에 야당의 지도부 인사들까지 대거 가세하면서 이같은 사태에 이른 것이다. 물론 크레인 위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진숙씨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사주측의 이해할 수 없는 처사에 제3자가 가세하는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특히 김진숙씨는 이 회사의 해고 노동자이고, 이 회사가 필리핀 공장을 건설한 후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하려는 상황에서 회사의 대주주들은 거액의 주식배당을 챙겼던 사실이 극단적 분노와 저항의식을 불러온 데 대한 공감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조는 어디까지나 노사 자율합의에 따라 분규를 해결하는 것이 순리이고 그것도 사업장별 노조원들의 뜻에 따라 문제해결에 접근하는 것이 원칙이다. 한진분규는 이미 지난달 27일 노사협상이 타결되고 조업이 재개되었다. 선박수주로 일감도 마련했다. 이제부터는 정상적인 노조활동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동안의 분규로 여러 가지 문제는 남아 있겠지만 그것은 단위노조에서 처리하면 될 것이고 도움이 필요할 경우 요청에 따라 상급노조에서 지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는 노조측 지원에 팔을 걷어 붙였던 제3자들도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김진숙씨도 감정을 자제하고 노동운동의 정위치로 돌아가는 것이 정도라 하겠다. 계속 크레인 시위를 벌이고 제3자인 시민단체와 정당의 지도부가 분쟁을 부추기는 행동은 노동운동의 상궤를 벗어난 것이다.

약7천명의 외부세력이 노사협상 타결 후에도 노조측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영도지역의 교통을 마비시켰고, 남기고 간 쓰레기더미로 몸살을 앓다 못한 주민들이 오죽하면 이들의 개입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을까. 노동운동도 단위 사업장 노조구성원들의 뜻에 반하는 독선으로 치달으면 결국 활동의 동력을 잃게 된다. 국민과 법을 무시하는 노동운동은 결국 설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민주국가에서 노동운동은 특정 정파를 지지할 수는 있으나 특정정파의 행동대로서의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노동운동의 길이다.

정당활동도 노조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노조가 못하는 정치활동을 정당의 설립과 활동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법제도다. 그러나 정당이 노조와 하나가 돼 노동운동을 벌이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특정노조의 지지를 받는 정당은 그 색깔에 맞는 정책을 개발하고 그것을 의회의 입법 활동을 통해 구현할 수 있다. 노조가 부당한 탄압을 받았을 때 국정조사를 하거나 의회활동을 통해 이를 시정케 할 수도 있다. 정당활동을 통해 이를 바로잡을 수 없을 경우 검찰에 고발하거나 법원의 판단을 구해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는 것이 우리사회의 상식이다. 그럼에도 이번 한진사태에서 민주당의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정동영 천정배 문학진 의원, 민주노동당의 이정희 대표를 비롯한 권영길 의원,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등 야당의 당대표와 중진의원들이 다수 참석해 직접적으로 노동운동을 지원했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최상급 국가보안시설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그럼에도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그것도 앞으로 정권을 잡겠다는 정당의 대표들이 이같은 정당활동의 영역을 넘어 불법 폭력적인 진입상황에서 크레인 시위를 지원했다는 것은 분명히 제도권 정당의 자세가 아니다. 노동운동과 정권쟁취 운동이 불법폭력과 거리를 좁혀 가며 손을 잡는다면 그것은 체제를 위협하는 활동이 될 수밖에 없다. 폭력혁명을 기도하지 않는다면 노조는 정당한 노동운동의 길을 가고, 정당은 합법적인 정치활동의 길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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