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밤` 문학동네 刊, 김유진 지음, 208쪽, 1만원

젊은 소설가 김유진(30)의 첫 장편소설 `숨은 밤`(문학동네 펴냄)이 출간됐다.

2004년 단편소설 `늑대의 문장`으로 문학동네를 통해 문단에 나온 김유진은 당시 신선한 상상력과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묘사로 문단에 화제를 낳았다.

`80년대 생(生)`인 김유진은 한유주, 김태용 등 일군의 작가들과 2000년대 젊은 문학의 한 흐름을 대표한다. 이 흐름은 이른바 `서사 파괴의 소설`이다.

이번 소설은 김유진 특유의 단단한 문장들이 담고 있는 시적 분위기는 한층 안정되고 아름다워졌다는 평이다.

한 소년과 한 소녀의 만남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여관에 맡겨진 소녀와 그곳에서 일하는 소년의 만남. 고아나 다름없이 마을에서 이방인 생활을 하는 이들의 불안과 분노를 그림 그리듯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특유의 몽환적 이미지와 여운 가득한 문장으로 소년과 소녀가 느끼는`사랑`의 전조(前兆)를 한 폭의 회화처럼 곱게 빚어냈다.

여기, 희미한 아이들이 있다. 한 아이는 어느 날 헛간의 썩은 볏짚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그 소년의 이름은 `기(基)`이다.

다른 아이는 트럭을 끌고 장사를 하러 다니는 아버지가 여관에 맡겨두었다. 그 소녀는 기가 일하는 여관의`404호`에 산다.

소년과 소녀는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그들은 여름 휴양지로 반짝 성수기를 이루는 이 마을에서 거의 유일한 이방인들이다.

첫사랑을 시작하려는 이들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제 마음 안에 왕국이 만들어졌다 무너지는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들은 마을에 안착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며, 이윽고 분노한다. 그리고 소년은 마을에 불을 지른다.

하지만 소설의 끝에선 소년과 소녀가 서로의 손을 잡음으로써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며 그것은 놀랍게도 `사랑`이라는 눈부신 단어로 매듭지어진다.

“너는 누굴 싫어해?

사람들. 거의 모든 사람들.

그럼 누굴 좋아해?

나는 너를 좋아해.”(203쪽)

소년과 소녀가 숨어든 한 동굴에는 커다란 뿔을 들이밀며 자세를 낮추고 있는 황소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제 몸보다 큰 황소에게 망설임 없이 죽창을 겨누는 용맹한 전사가 그려져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기원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여전히 미흡하고, 어쩔 수 없이 미완성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좋아`한다. 견딜 수 없는 세상을 견디고 극복하는 작가의 해답은 이토록 아름답다.

“제목은 `빚 뒤에 숨은 어둠`이란 뜻이에요. 모닥불에 가장 근접한 곳이 어둡잖아요. 회화에서도 가장 밝은 부분을 그릴 때 역광을 넣고요. 이 소설을 쓸 때는 미성숙한 사람들의 사랑의 전조를 쓰고 싶었죠. 나타났다 사라지는 감정, 태어나기 전에도 사라지는 감정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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